나는 EU AI법 완화에 찬성한다 — 빅테크가 원하는 이유와 정반대 이유로
한줄 요약
EU AI Act의 디지털 옴니버스 VII 패키지가 2026년 5월 7일 3자 합의에 도달하면서, 고위험 AI 시스템 준수 기한이 2027년 12월로 16개월 연장되고 '고위험' AI의 정의 범위가 축소되었으며 GDPR에 AI 학습 목적 개인정보 처리를 합법적 이익으로 인정하는 제88조c가 신설되었다. 디지털 산업의 EU 로비 지출이 연간 1억 5,100만 유로로 2021년 대비 55% 급증한 가운데, EU 집행위 회의의 69%가 기업 단체에 편중되고 NGO는 16%에 그쳐 127개 시민사회단체가 "EU 역사상 최대 디지털 기본권 후퇴"라고 규정했다. Stanford HAI에 따르면 EU의 AI 민간 투자는 미국의 4%에 불과하고 유럽 AI 스타트업의 25%가 미국 이전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복잡한 규제가 오히려 빅테크의 '규제 해자'를 강화한다는 역설적 시각과 George Stigler의 규제 포획 이론이 이 논쟁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한다. GDPR 제88조c의 운명은 noyb의 법적 도전과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에 달려 있으며, 이 결과가 EU AI 생태계 전체의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논쟁의 본질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규제가 기술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는 구조적 문제이며, EU가 연간 4,800억 유로의 AI 주권 잠재 가치를 실현하려면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
핵심 포인트
고위험 AI 준수 기한 2027년 12월로 16개월 연장 — 법적 확실성인가 이행 의지 부재인가
EU 디지털 옴니버스 VII 패키지의 가장 눈에 띄는 변경은 독립형 고위험 AI 시스템(Annex III)의 의무 이행 기한을 2026년 8월에서 2027년 12월 2일로, 규제 대상 제품 내장형(Annex I)은 2028년 8월 2일로 연장한 것이다. Latham & Watkins의 분석에 따르면 기술 표준과 가이던스 문서가 아직 미완성된 상태에서 기업에게 준수를 강제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준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appliedAI 연구가 밝힌 대로 기업 AI 시스템의 40%가 위험 분류조차 불명확한 상태라는 점은 이 연장이 단순한 '시간 부족'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이행 의지' 문제임을 시사한다. EU AI 사무소가 기술 표준 개발에 이미 8개월 이상 지연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16개월 연장이 실질적 준비로 이어질지 또 다시 연장 요구의 빌미가 될지는 AI 사무소의 집행력에 달려 있다. SME 기준이 직원 750명 이하, 연매출 1.5억 유로 이하까지 확대되어 간소화 혜택 대상이 넓어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 기준 확대가 대규모 기업의 자회사까지 혜택을 받는 허점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2027년 12월이 진짜 마지막 기한이 될지, GDPR 시행 초기처럼 형식적 준수에 그칠지가 이 패키지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빅테크 로비의 구조적 비대칭 — 연간 1억 5,100만 유로와 Stigler의 규제 포획
Corporate Europe Observatory의 2026년 1월 보고서가 밝힌 수치는 충격적이다. 디지털 산업 전체의 EU 로비 지출이 연간 1억 5,100만 유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2021년 대비 55%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개별 기업으로 보면 Meta가 1,000만 유로, Microsoft와 Apple과 Amazon이 각각 700만 유로, Google이 450만 유로를 투입했고, 5개사 합산만 연간 3,500만 유로가 넘는다. EU 집행위가 2025년 상반기에 가진 378건의 회의 중 69%가 기업 단체와의 미팅이었고, NGO 미팅은 16%에 그쳤다는 사실은 1971년 George Stigler가 정립한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이론의 교과서적 사례다.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 산업에 포획되어 공공 이익보다 기업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현상이 EU 브뤼셀에서 실시간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조항별 비교 분석에서 Digital Omnibus의 핵심 변경 사항들이 Google, Meta, Microsoft의 로비 문서와 "조항 수준에서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는 이 포획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임을 입증한다. 이 구조적 비대칭이 시정되지 않는 한, 향후 모든 EU 디지털 규제 논의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것이다.
GDPR 제88조c 신설 — AI 학습용 데이터 처리 합법화의 양날의 검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변경은 GDPR에 제88조c를 신설해서 'AI 학습 목적의 개인정보 처리를 합법적 이익(legitimate interest)으로 명시'한 것이다. IAPP에 따르면 이 조항은 사용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도 대규모 개인정보를 AI 모델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으며, 민감 정보의 AI 학습 활용에 대한 보호도 약화시켰다. 유럽 데이터보호이사회(EDPB)와 유럽 데이터보호감독관이 2026년 2월 공동 의견서에서 "불필요한 조항"이라며 공식 반대한 사실은 이 조항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반면 유럽 AI 기업 입장에서는 이 조항이 미국과 중국 경쟁자들과의 데이터 비대칭을 해소할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주장도 있다. OpenAI가 이미 수조 건의 웹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킨 반면 유럽 기업은 동일한 작업에 법적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의 최종 운명은 noyb의 맥스 슈렘스가 예고한 법적 도전과 CJEU의 판결에 달려 있으며, 그 결과가 EU AI 생태계 전체의 방향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EU AI 투자 격차 — 미국의 4%라는 구조적 함정
Stanford HAI의 2025 AI Index 보고서가 제시한 수치는 EU의 AI 위기가 규제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2024년 미국 AI 민간 투자가 1,091억 달러로 글로벌 총액의 81%를 차지한 반면, EU의 투자는 미국의 4%, 약 44억 달러에 불과했다.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AI 투자를 보면 미국 4,700억 달러 대 EU 500억 달러로, 10배 가까운 격차가 존재한다. 생성형 AI 부문에서는 미국 투자가 EU와 영국과 중국을 합산한 것보다 254억 달러나 더 많았다. EU가 InvestAI 이니셔티브로 2030년까지 2,000억 유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빅테크 4사(Meta, Alphabet, Amazon, Microsoft)의 2026년 한 해 AI 인프라 지출 예상이 7,250억 달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규모의 격차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알 수 있다. 이 격차는 규제 완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VC 생태계, 자본시장 분절, 인재 유출이라는 복합적 구조 문제의 해법이 함께 필요하다.
브뤼셀 효과의 변질 — 스타트업 25% 이탈과 규제 경쟁의 역설
EU가 GDPR으로 전 세계 개인정보 보호 규범을 정의한 것을 "브뤼셀 효과"라 부르는데, AI 규제에서는 이 효과가 "브뤼셀 역효과"로 변질되고 있다. Sifted의 서베이에 따르면 유럽의 가장 유망한 AI 스타트업 중 25%가 미국 이전을 고려하고 있고, 50%가 AI Act가 혁신을 늦출 것이라 답했으며, VC의 73%가 유럽 AI 스타트업 경쟁력 저하를 예상했다. Fortune의 2026년 5월 보도에서 스웨덴계 VC Creandum의 대표는 "우리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계획하지 않았음에도 미국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증언했다. European Business Review는 기업들이 단일 글로벌 제품 대신 관할권별 제품 분리를 선택하면서 브뤼셀 효과의 원천인 "높은 EU 기준의 글로벌 확산"이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U가 Digital Omnibus로 스스로 기준을 낮추면 유일한 글로벌 영향력이었던 규범 설정력 자체가 사라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려면 규제의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긍정·부정 분석
긍정적 측면
- 유럽 AI 스타트업의 숨통 — SME 간소화 확대와 규제 해자 완화
준수 기한 연장에 더해 SME 기준이 직원 750명 이하, 연매출 1.5억 유로 이하로 확대되면서 간소화 혜택을 받는 기업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SQ Magazine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AI Act 준수 비용이 5만~50만 유로에 달하고, 직원 100~250명 규모 중견기업의 품질관리 시스템 초기 구축 비용만 19만 3천~33만 유로인데, 이 부담이 상당 부분 경감되는 셈이다. EU·영국 개발자의 60%가 AI Act 때문에 출시를 지연시키고 33% 이상이 기능을 삭제하거나 다운그레이드했다는 수치는 규제 부담이 혁신의 실질적 장벽이었음을 보여준다. 지연으로 인한 기업당 평균 손실이 9만 4천~32만 2천 유로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한 연장이 유럽 AI 생태계에 상당한 호흡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 간소화가 빅테크의 '규제 해자'를 일부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한국 기업들을 포함한 비유럽 기업들의 EU 시장 진출 부담도 낮출 것으로 본다.
- 진짜 위험 영역의 규제 강화 — 옴니버스의 반직관적 신규 금지 조항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가 규제를 풀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공정하게 짚어야 한다. 비동의 성적 AI 생성물(nudifier) 금지와 아동 성착취물 AI 금지라는 새로운 금지 조항이 추가됐으며, nudifier 금지는 2026년 12월 2일부터 신속 발효된다. 이 두 영역은 AI 기술이 실질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현장이며, 기존 AI Act에서 명시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사각지대였다. 이 금지 조항의 신설은 EU가 규제의 방향을 "모든 AI를 통제"에서 "진짜 피해가 발생하는 곳을 집중 규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선별적 엄격화(targeted approach)가 포괄적 사전 규제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며, 이 접근법이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이 금지 조항들이 빅테크의 로비 요구와는 무관한 사회적 합의 사안이라는 점이다.
- EU 차원 규제 샌드박스 도입 — 2028년부터 유럽 규모의 혁신 실험 가능
Latham & Watkins의 분석에 따르면 2028년부터 EU 차원의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되어, 혁신 기업이 국가 단위가 아닌 유럽 전체 규모에서 AI 기술을 실험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회원국별로 샌드박스 요건이 달라 범유럽 테스트가 사실상 불가능했는데, 단일 샌드박스 체계는 유럽 AI 스타트업의 스케일업 속도를 높일 수 있다. 4억 5천만 소비자에게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단일 시장의 장점이 규제 분절로 무력화됐던 상황을 개선하는 의미가 있다.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유럽 AI 시장이 2030년까지 3,703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성장이 현실화되려면 혁신 기업이 규제 불확실성 없이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 샌드박스가 제대로 설계된다면 EU의 AI 경쟁력 향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 규제 실행 가능성의 현실적 인정 — 존재하지 않는 기준 위반 처벌 방지
기술 표준과 가이던스 문서가 아직 미완성 상태에서 기업에게 준수를 강제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시험 답안지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U AI 사무소의 기술 표준 개발이 8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래 기한을 강행했다면 두 가지 최악의 결과만 나왔을 것이다. 기업들이 대충 형식적으로 맞추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두 경우 모두 규제의 신뢰성을 훼손한다. EU가 이 현실을 인정하고 일정을 조정한 것은 규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며, Latham & Watkins도 "기한 연장이 법적 확실성(legal certainty) 제공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16개월의 추가 시간 동안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인증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2027년 12월 시행은 2026년 8월 시행보다 실질적으로 더 효과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
우려되는 측면
- GDPR 개인정보 보호 근간의 훼손 위험 — 제88조c의 모호한 합법적 이익 기준
GDPR에 신설된 제88조c, 즉 AI 학습 목적 데이터 처리의 합법적 이익 조항은 이번 패키지에서 가장 위험한 변경이다. IAPP 분석에 따르면 이 조항은 사용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도 빅테크가 대규모 개인정보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으며, 민감 정보에 대한 보호까지 약화시켰다. "합법적 이익"이라는 법적 기준은 EU 데이터 보호법에서 가장 모호하고 남용 가능성이 높은 개념 중 하나다. EDPB와 유럽 데이터보호감독관이 공동으로 "불필요한 조항"이라며 공식 반대한 사실은 이 우려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127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명으로 이 조항을 비판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 커뮤니티 전체의 경고에 가깝다. GDPR은 2018년 이래 전 세계 개인정보 보호의 기준이었는데, 이 조항 하나가 그 신뢰의 근간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 고위험 AI 정의 축소에 따른 규제 사각지대 — "일방적·비밀리" 면제의 위험
Amnesty USA가 지적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Digital Omnibus로 인해 AI 도구 제공자가 "일방적으로, 비밀리에(unilaterally and secretly)" 고위험 의무에서 스스로를 면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행 AI Act에서는 중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AI 도구 개발자가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야 하는데, 제안된 변경으로 이 투명성 의무가 약화된다. 채용 AI나 신용평가 AI처럼 개인의 경제적 기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복지와 치안 분야에서의 차별적 프로파일링 위험도 함께 증가한다. 이 변경이 디지털 억압과 불법 감시의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을 시민사회가 경고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고위험 분류 기준 완화가 단기적으로 기업 부담을 줄이더라도, 대형 AI 차별 사건이 터지면 규제가 더 극단적으로 강화되는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
- 로비가 규제를 바꾼다는 위험한 선례 — DSA와 DMA까지 파급 우려
Corporate Europe Observatory의 조항별 비교 분석이 보여주듯, Digital Omnibus의 핵심 변경 사항들이 Google, Meta, Microsoft의 로비 문서와 조항 수준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충분히 로비하면 규제가 바뀐다"는 메시지가 산업 전체에 퍼지면 EU의 규제 신뢰성 자체가 흔들린다. 이미 Meta는 DMA(디지털 시장법) 의무 완화를 위한 로비를 강화하고 있고, 아마존은 DSA(디지털 서비스법)의 추천 알고리즘 투명성 조항 약화를 추진하고 있다. Jacques Delors Centre가 지적한 대로 "빅테크가 지배하는 디지털 시장에서 규제 완화의 수혜자는 유럽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 빅테크"라면, 이번 합의는 시민 보호라는 규제의 본래 목적을 배반한 것이 된다. 규제가 로비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EU 디지털 정책 전체의 민주적 정당성이 침식되고,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유럽 시민의 신뢰 상실과 브뤼셀 효과 자기 파괴
EU는 GDPR을 통해 "우리는 시민의 데이터 권리를 최우선으로 지킨다"는 약속을 전 세계에 했고, 이것이 브뤼셀 효과의 정당성 기반이었다. 같은 기관이 같은 입으로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을 확대하는 조항을 통과시키는 것은 시민들에게 명백한 모순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European Business Review가 분석한 대로 EU가 스스로 기준을 낮추면 브뤼셀 효과의 원천 자체가 사라진다. EU의 유일한 글로벌 AI 영향력은 "가장 엄격한 규제"에서 나왔는데, 그 엄격함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투자 유치나 기술 경쟁력에서도 미국과 중국에 한참 뒤처진다면, EU는 규제도 혁신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Sifted의 서베이에서 유럽 AI 스타트업의 25%가 미국 이전을 고려하는 것은 이미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며, 규제 완화로도 이 이탈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
전망
당장 앞으로 6개월, 그러니까 2026년 하반기에 벌어질 일을 좀 따져보자. 디지털 옴니버스 합의는 아직 EU 의회 본회의와 이사회 최종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좌파 정당들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회 내 녹색당과 좌파 블록은 이미 "빅테크에 대한 굴복"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127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명 성명이 의회 표결에 압박을 가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회-이사회-집행위 3자 합의가 뒤집어진 전례는 극히 드물다. 나는 최종 투표에서 합의안이 통과될 확률을 85% 이상으로 본다. 통과 후 각 회원국의 국내법 전환 과정에서 해석 싸움이 벌어질 텐데, 프랑스와 독일이 완화를 적극 수용하는 반면 네덜란드와 벨기에 같은 국가들은 자국 내 추가 보호 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비동의 성적 AI 생성물(nudifier) 금지 조항은 2026년 12월 2일부터 발효되므로, 이 부분의 집행 체계 구축이 하반기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단기 시장 반응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EU AI법 완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유럽 AI 섹터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높아졌고, 프랑스의 Mistral AI를 비롯한 유럽 AI 챔피언들이 이 결정을 환영했다.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유럽 AI 시장은 2024년 664억 달러에서 2030년 3,703억 달러로 연평균 33.2% 성장이 예상되는데, 이번 규제 완화가 이 성장 궤도를 가속화할 인센티브를 만들었다. 반면 개인정보 보호 비영리단체인 noyb의 맥스 슈렘스는 GDPR 제88조c에 대한 법적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슈렘스가 GDPR 관련 소송에서 이미 두 번이나 EU 최고법원에서 승소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법적 도전의 성공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유럽 데이터보호이사회(EDPB)와 유럽 데이터보호감독관도 이 조항에 반대하는 공동 의견서를 발표한 만큼, CJEU가 제88조c에 제동을 건다면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 전체의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한국 관점에서 이번 EU AI법 완화는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한국은 2024년 1월 아시아 최초의 포괄적 AI 기본법(인공지능 기본법)을 제정했으며, EU AI Act를 핵심 참조 모델로 삼아 세부 시행령을 설계하고 있다. EU가 스스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시행령 설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AI 반도체를 유럽 AI 인프라에 대규모 공급하고 있어 EU AI법 준수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기한 연장으로 단기 부담이 줄어들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와 카카오의 AI 서비스가 유럽 시장 진출을 고려할 때 규제 복잡성 감소는 진입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반면 GDPR 제88조c처럼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낮아지는 방향이라면, 유사한 완화 압력이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PIPA) 체계에도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EU와 한국 모두 "규제 강도 vs 혁신 촉진"이라는 동일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이번 EU의 선택이 한국 AI 거버넌스 논쟁에도 직접적인 참조점이 될 것이다.
6개월에서 2년 사이, 그러니까 2027년 중반부터 2028년까지를 보면 구조적 변화가 가시화될 것이다. 독립형 고위험 AI 시스템(Annex III)의 준수 기한이 2027년 12월 2일이고, 규제 대상 제품 내장형(Annex I)은 2028년 8월 2일이므로 기업들은 이 기간 내내 준비에 돌입한다. 핵심은 EU AI 사무소(AI Office)의 역할이다. appliedAI 연구가 밝힌 대로 기업 AI 시스템의 40%가 위험 분류조차 불명확한 상태인데, AI 사무소가 이 분류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해석하고 집행하느냐에 따라 규제의 실질적 강도가 결정된다. 나는 AI 사무소가 초기에는 기업 친화적으로 운영되다가 첫 번째 대형 AI 사고가 발생하면 급격히 강경해지는 패턴을 밟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건 GDPR 초기 집행과 정확히 같은 궤적이다. GDPR이 2018년에 시행됐지만 의미 있는 대규모 과징금은 2019년 영국항공 사건(2억 유로)이 터진 후에야 본격화됐다. 2027년부터 2028년 사이에 AI 관련 대형 피해 사례가 발생할 확률을 나는 70% 이상으로 본다.
중기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시나리오는 '규제 경쟁(regulatory competition)'의 심화다. EU가 AI 규제를 완화하면 미국, 영국, 일본도 자국 규제를 재검토할 인센티브가 생긴다. 실제로 미국 Trump 행정부는 2025년 12월 AI 집행 유예와 주별 AI 입법 제한을 제안했고, 영국은 원칙 기반의 연성 규제를 표방하고 있다. Gartner에 따르면 2027년까지 35%의 국가가 지역 특화 AI 체계로 고착될 전망이며, 2030년까지 AI 규제가 세계 경제의 75%로 확대되면서 AI 거버넌스 준수 지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다. EU 완화는 글로벌 규제 하향 경쟁(race to the bottom)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나는 2028년까지 최소 2개 주요국이 포괄적 AI 규제법을 제정할 것으로 보며, 그 과정에서 EU AI Act가 참고는 되되 "모범 사례"로 인용되지는 못할 것이라 본다. EU의 글로벌 AI 투자 비중이 현재 4%(Stanford HAI 기준)에서 점진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미국이 글로벌 VC의 83%를 차지하고 빅테크 4사가 AI 인프라에만 연간 7,250억 달러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그 격차를 좁히기엔 역부족이다. EU InvestAI가 2030년까지 2,000억 유로를 목표로 하고 있고 4~5개 AI 기가팩토리(각 10만 개 AI 칩)를 2027~2028년에 가동할 계획이지만, 빅테크 4사의 1년치 AI 지출과 비교하면 5년 투자 목표가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2~5년 뒤인 2028년에서 2031년까지의 장기 전망은 훨씬 더 불확실하지만, 몇 가지 구조적 흐름은 이미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AI 규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AI 시스템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사전에 규제한다"는 접근은 기술 발전 속도 앞에서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28년쯤이면 범용 AI 시스템의 능력이 고위험 대 저위험이라는 분류 체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모델이 의료 진단, 법률 자문, 채용 평가,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모두 수행하는 상황에서 어떤 카테고리에 넣겠는가? McKinsey가 추산한 유럽 AI 주권의 연간 4,800억 유로 잠재 가치는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지 않아야" 실현 가능한 수치다. EU는 결국 '시스템 기반 규제'에서 '결과 기반 규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나는 2029년까지 EU AI Act의 두 번째 대규모 개정, 어쩌면 사실상의 전면 재작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더 근본적인 질문은 "국가 단위의 AI 규제가 과연 가능한가"이다. AI는 국경을 모른다. 유럽에서 규제하면 기업이 미국 서버에서 서비스하면 그만이다. 2030년까지 AI 서비스의 60% 이상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될 것이고, 물리적 위치 기반 규제의 효력은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 European Business Review가 지적한 대로, 기업들이 단일 글로벌 제품 대신 관할권별 제품 분리를 선택하면서 브뤼셀 효과의 원천인 "높은 EU 기준의 글로벌 확산"이 약화되고 있다. EU가 Digital Omnibus로 스스로 기준을 낮추면 브뤼셀 효과의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나는 궁극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파리협정처럼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프레임워크가 필요할 것이라 본다. EU가 이 프레임워크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지금의 "과도하게 복잡한 규제를 만들고 빅테크 로비 앞에서 후퇴하는" 패턴을 깨야 한다. 대신 전 세계가 채택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강력한 원칙, 예를 들어 AI 투명성 의무, 피해 발생 시 자동 배상 체계, 알고리즘 감사 의무 같은 것을 제시해야 한다. 유럽이 GDPR처럼 세계 표준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지만, 그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으며 2030년이면 완전히 닫힐 것이라 나는 본다.
시나리오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Bull 시나리오(확률 20%)에서는 EU가 이번 완화를 계기로 규제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서 사후 책임 기반의 스마트한 규제 모델을 만들고 글로벌 표준이 된다. EU InvestAI의 2,000억 유로와 AI 기가팩토리가 계획대로 가동되면서 유럽 AI 투자 비중이 글로벌의 8~10%로 올라가고, McKinsey가 추산한 연간 4,800억 유로의 AI 주권 가치가 70% 이상 실현된다. 유럽이 미국-중국 양강 구도에 진정한 제3의 축으로 부상하는 시나리오다. Base 시나리오(확률 55%)에서는 현 합의대로 시행되지만 AI 사무소의 집행이 미약해서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유럽 AI 시장은 연평균 33% 성장을 유지하지만 미국과 중국과의 절대 격차는 유지된다. GDPR 제88조c는 법원과 EDPB 해석을 통해 점진적으로 명확화되고, 2029년에 또 한 번의 대규모 개정 논의가 시작된다. Bear 시나리오(확률 25%)에서는 제88조c에 대한 법적 도전이 성공하고 대형 AI 사고가 터지면서 EU가 규제를 급격히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유럽 AI 스타트업의 미국 이전이 현재 25%에서 40% 이상으로 가속화되고, 글로벌 VC의 유럽 배분 비율이 더 줄어든다. 브뤼셀 효과는 완전히 사라지고 유럽이 AI의 "규제만 하는 대륙"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내 전망이 틀릴 수 있는 조건도 솔직히 짚어둔다. 만약 빅테크가 이번 완화를 기회로 유럽 시민의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침해하는 사건이 2026년 하반기에 터진다면, 정치적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합의 자체가 뒤집힐 수 있다.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GDPR 강화의 정치적 동력을 제공했던 것처럼, AI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규제 강화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독자들에게 제언하자면, AI 규제의 "강화냐 완화냐"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를 따져보길 바란다.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SME 간소화 혜택(직원 750명 이하, 연매출 1.5억 유로 이하)을 적극 활용하되 2027년 12월 데드라인은 반드시 로드맵에 반영해야 한다. 투자자라면 유럽 AI 섹터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되 제88조c 관련 법적 리스크를 헤지하는 게 현명하다. 시민이라면 자신의 데이터가 AI 학습에 사용되는 범위를 직접 확인하고, 옵트아웃 권리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 결국 규제가 아니라 시민의 자각과 행동이 최후의 방어선이다.
출처 / 참고 데이터
- Artificial intelligence: Council and Parliament agree to simplify and streamline rules — EU Council
- Article by article: how Big Tech shaped EU's roll-back of digital rights — Corporate Europe Observatory
- EU simplification laws — Amnesty International
- 2025 AI Index Report — Economy — Stanford HAI
- EU Digital Omnibus amendments to GDPR to facilitate AI training miss the mark — IAPP
- The EU's Digital and AI Omnibus — Jacques Delors Centre
- Big Tech spending on Brussels lobbying hits record high — Euronews
- EU AI Act compliance cost statistics — SQ Magazine
- AI boom pulling Europe's hottest startups to the U.S. — Fort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