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비드 왕이 '세상의 절반'이라 부른 도시에 폭탄이 떨어졌다
한줄 요약
이스파한의 나크시-에 자한 광장이 2026년 3월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598년 사파비드 왕조 샤 아바스 1세가 조성한 이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류 공동 유산이었다. 이란 전역 140개 이상의 박물관과 유적지가 훼손되었고, 국제법 전문가 100인 이상이 이를 '잠재적 전쟁범죄'로 경고했음에도 서방 주요 정부의 반응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우크라이나 문화재 파괴에 대한 즉각적인 국제 분노와 비교하면 이 침묵은 국제 문화재 보호 체계의 선택적 적용이라는 불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954년 헤이그 협약과 로마 규정이 규정한 문화재 보호의 원칙이 강대국 군사작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이스파한의 상처가 증명하고 있다.
핵심 포인트
국제 문화재 보호 체계의 구조적 이중성
1954년 헤이그 협약과 1998년 로마 규정은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와 의도적 파괴의 전쟁범죄 규정을 명시하고 있으나, 그 적용은 가해자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IS의 팔미라 파괴(2015년)와 탈레반의 바미얀 불상 폭파(2001년)에는 즉각적인 국제 분노와 제재가 따랐지만, 2003년 이라크 국립박물관 약탈(미군 점령하)이나 2026년 이스파한 폭격(미·이스라엘 공습)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온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 이중성의 핵심은 법의 내용이 아니라 법의 집행 의지에 있다. 뉘른베르크 이후 전범 재판 구조가 '승자가 패자를 심판하는' 모델에 기반하며, 이 모델이 문화재 보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강대국의 행위에 대한 실질적 제재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100인 이상의 국제법 전문가가 이스파한 사태를 '잠재적 전쟁범죄'로 경고했음에도 P5 국가의 거부권으로 안보리 결의는 차단되었고, 이는 현행 국제법 체계의 근본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이 이 구조적 이중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국제 문화재 보호의 선택적 적용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나크시-에 자한 광장의 문명사적 의미와 피해 규모
나크시-에 자한 광장은 1598~1629년 사파비드 왕조 샤 아바스 1세가 건설한 약 89,600제곱미터의 대규모 도시 공간으로, 종교(이맘 모스크·셰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권력(알리 카푸 궁전), 상업(그랜드 바자르)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이슬람 도시 설계의 정수다. 유네스코가 1979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이 광장은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페르시아 문명과 시아파 이슬람의 융합을 상징하는 이란 국민 정체성의 핵심이다. 2026년 3월 공습으로 압바시 자메 모스크와 알리 카푸 궁전이 충격파 피해를 입었고, 체헬 소투운 궁전의 프레스코화에 균열이 발생했으며, 17세기 '하프트 랑기' 기법 타일 일부가 붕괴됐다. The Art Newspaper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전역 140개 이상의 박물관·유적지가 피해를 입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5곳이 포함되었다. 이 피해의 문명사적 의미는 건물 자체의 물리적 손상을 넘어서, 400년간 보존되어 온 인류 공동 유산의 비가역적 훼손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부수적 피해' 프레이밍의 위험성
이스파한의 문화유산 피해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처리되는 관행은 구조적으로 위험한 선례를 만든다. 군사 목표물과의 근접성이라는 논리로 주변 문화재 피해를 정당화하는 구조는, 역으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거의 모든 역사 유적을 '잠재적 부수적 피해 지대'로 격하시킨다. 이스파한은 핵 시설이 집중된 나탄즈에서 약 120km 떨어진 도시로, 도시 자체가 군사 목표는 아니었음에도 충격파가 문화유산에 피해를 입혔다. 이 논리가 확대 적용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1,199곳 중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상당수가 군사작전의 '허용 가능한 부수적 피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헤이그 협약 제4조가 규정한 '불가피한 군사적 필요성' 예외 조항이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확대 해석되는 상황이며, 이 예외 조항의 남용을 제한하는 구체적 기준의 부재가 국제법의 가장 큰 허점으로 남아있다. 루브르가 파리 도심에, 콜로세움이 로마 한복판에 있다는 이유로 부수적 피해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면, 문화재 보호라는 개념 자체가 공허해진다.
디지털 기록화와 복원 기술의 희망과 한계
이스파한 주요 유적의 3D 스캐닝과 디지털 트윈 프로젝트가 2010년대부터 진행되어 왔고, CyArk 같은 비영리 단체의 정밀 디지털 아카이브가 존재한다는 점은 복원의 희망을 제공한다. 시리아 팔미라 개선문이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분 복원된 사례(2016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 재현)가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플래닛랩스(Planet Labs)의 위성 이미지 분석이 72시간 내 피해 증거를 공개한 것도 기술의 힘을 보여주며, 이 데이터는 향후 ICC 등 국제 사법기관의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복제와 물리적 복원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크시-에 자한의 17세기 '하프트 랑기' 타일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장인이 이란 전체에 10명 미만이며, 국제 제재로 특수 복원 재료의 수입이 제한되는 현실에서 물리적 복원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기술은 '기억의 소실'은 방지할 수 있지만, 원본의 물질적 진정성(material authenticity)은 한번 파괴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디지털 아카이빙은 대체재가 아닌 최후의 보루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방 침묵이 만드는 위험한 선례 효과
우크라이나 오데사 역사 지구 피해 시 유네스코 긴급 세계유산 등재까지 추진했던 국제사회가, 이스파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한 것은 문화재 보호 체계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200인 이상의 국제 문화계 인사가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서방 주요 정부 수반 중 이를 공식 비난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고, 이 비대칭적 반응은 향후 러시아나 중국 같은 국가가 자국의 문화재 파괴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국제법의 권위는 일관된 적용에서 나오며, 한쪽에는 적용하고 다른 쪽에는 적용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2003년 이라크 국립박물관 약탈, 2015년 예멘 사나 구시가지 폭격, 그리고 2026년 이스파한 — 서방 동맹국의 군사작전과 관련된 문화재 파괴에 대한 국제적 대응의 패턴은 너무나 일관되게 미온적이며, 이 패턴이 고착될수록 1954년 헤이그 협약의 보편적 구속력은 약화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향후 분쟁 지역에 위치할 문화유산들이다.
긍정·부정 분석
긍정적 측면
- 국제 시민사회의 빠른 결집과 집단 행동
200명 이상의 국제 문화계 인사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블루실드 인터내셔널이 사건 발생 48시간 내에 현지 피해 조사 팀을 구성한 것은 국제 시민사회의 위기 대응 역량이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란 내부에서도 이스파한 대학과 국립문화유산기구가 합동 피해 평가를 즉각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반응이 미온적일 때 시민사회가 독자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국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재 보호의 최후 방어선이 조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과거 바미얀 불상 파괴(2001년) 때도 국제 시민 여론이 결국 탈레반에 대한 문화 분야 제재의 근거를 만든 사례가 있어, 시민사회의 지속적 압력이 장기적으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충분하다. 시민사회의 이런 결집력은 정부간 협의체의 느린 대응을 보완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 디지털 복원 기술의 비약적 발전
CyArk를 비롯한 비영리 단체들이 이스파한 주요 유적의 정밀 3D 스캐닝을 이미 2010년대부터 진행해 왔기 때문에, 물리적 파괴가 발생해도 복원의 디지털 기준선이 존재한다. 시리아 팔미라 개선문이 2016년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재현된 사례는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플래닛랩스의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 분석이 72시간 내에 피해 증거를 공개한 것도 디지털 기술의 힘을 보여주며, 이 데이터는 향후 ICC 등 국제 사법기관의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AI 기반 피해 자동 분류 시스템은 시리아·이라크 사례에서 시범 운영되어 정확도 92%를 달성했고, 이스파한 사태가 이 기술의 실전 배치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이 전쟁의 파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기억의 소실 방지와 법적 증거 확보라는 두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 헤이그 협약 개정 논의에 새로운 추동력 제공
유럽 의회 문화위원회가 2026년 4월 '강대국 군사작전에서의 문화재 보호 강화' 결의안을 발의한 것은 이스파한 사태가 국제 법제도 개선의 촉매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결의안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기존 헤이그 협약의 '군사적 필요성' 예외 조항의 남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국제 논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적 진전이다. 2016년 ICC의 말리 팀북투 알 마흐디 유죄 판결 선례도 재조명되고 있어, 문화재 파괴에 대한 국제 형사 책임 추궁의 법적 토대가 강화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파한 사태에 대해 예비심사를 개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기존 체계에 대한 도전이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헤이그 협약 제2의정서의 실질적 개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법적 프레임워크의 강화는 느리지만, 이스파한이 그 속도를 앞당기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 문화유산 보호의 국제 안보 의제화
이스파한 사태를 계기로 브루킹스 연구소, 채텀하우스 등 주요 싱크탱크들이 문화유산 파괴와 강제 이주, 정체성 말살, 장기 사회 불안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집중 분석하기 시작했다. 문화재 파괴가 단순한 물질적 손실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프레이밍이 학계를 넘어 정책 담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에서 수메르 유적 파괴 후 20년이 지나도 국민적 정체성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는 사례, 보스니아 모스타르 다리 파괴(1993년)가 민족 간 화해에 걸림돌이 된 사례 등이 학술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문화재 보호를 '교양 이슈'에서 '안보 이슈'로 격상시키는 담론적 전환으로, 장기적으로 정책 자원의 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화유산이 안보 의제에 포함된다는 것은 예산, 인력, 외교적 관심의 증가를 의미한다.
우려되는 측면
- 선례 효과로 인한 국제 보호 기준 약화
서방 동맹국의 군사작전으로 인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피해에 대해 국제사회가 사실상 침묵함으로써, 향후 유사 상황에서의 문화재 보호 기준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국제법의 권위는 일관된 적용에서 나오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문화재 파괴에는 강력 대응하면서 이스파한에는 침묵하는 이중 잣대는 러시아, 중국 등 국가가 자국의 문화재 파괴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스파한 프리시던트'라는 용어가 이미 국제법 학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강대국의 군사작전에서 문화재 피해가 '용인 가능한 수준'으로 재정의되는 위험한 경향을 반영한다. 향후 대만 해협 위기나 남아시아 분쟁 등에서 이 선례가 원용될 경우, 전 세계 분쟁 지역의 세계유산까지 위협받게 된다. 일단 형성된 국제법 선례는 되돌리기 극히 어려우며, 이스파한 사태의 방치는 앞으로 수십 년간 문화재 보호 체계 전반을 잠식하는 구조적 약점으로 남을 것이다.
- 국제 제재 하 복원의 현실적 난관
이란이 국제 제재 하에 있기 때문에 문화재 복원에 필요한 특수 재료와 장비의 수입이 극도로 제한된다. 17세기 나크시-에 자한의 타일은 '하프트 랑기' 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기법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장인이 이란 전체에 10명 미만이며, 노령화로 기술 전수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 제재가 문화재 복원 재료에 대한 명시적 예외를 두지 않는 한, 물리적 피해 복구는 최소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시리아 팔미라의 경우 내전 종료 후에도 10년이 지나도록 본격적 복원이 시작되지 못한 전례가 있고, 이란의 경우 제재라는 추가 장벽이 존재해 상황은 더 어렵다. 유네스코 긴급 기금이 존재하지만, 미국의 유네스코 분담금 미납으로 기금 규모 자체가 축소되어 실질적 지원은 제한적이며, 이란을 향한 재정 지원에는 별도의 제재 예외 승인이 필요해 행정적 병목도 심각하다.
- 문화유산 파괴의 정체성 말살 도구화 위험
이스파한의 유적들은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이란 국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사파비드 왕조가 건설한 건축물들은 시아파 이슬람과 페르시아 문명의 융합을 상징하며 이란인들에게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장소다. 이런 장소의 파괴는 물리적 손실을 넘어 집단 기억과 문화적 연속성에 대한 공격이며, 이라크에서 수메르 유적 파괴가 이라크 국민의 역사적 정체성에 남긴 상처가 20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문화유산 파괴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그 결과로 피해 공동체의 역사적 서사와 자기 인식에 깊은 균열이 생기며, 이 균열은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보스니아 모스타르 다리 파괴(1993년)와 재건(2004년) 사례가 보여주듯, 물리적 복원이 이루어져도 심리적·문화적 상처는 별도의 치유 과정을 필요로 하며, 이 과정은 종종 수십 년이 걸린다. 이스파한의 경우 이란 국민의 자부심과 문명적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점에서, 물리적 피해를 넘어선 장기적 사회 심리적 후유증이 우려된다.
- 관광 산업 붕괴와 경제적 연쇄 파괴
이스파한은 이란 최대 관광 도시로 연간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으며, 나크시-에 자한 광장 주변 그랜드 바자르에는 5,000개 이상의 상점이 영업 중이었고 직간접 고용 인원은 약 2만 명에 달했다. 전쟁으로 인한 관광 산업 붕괴는 이들 생계에 직접적 타격을 주며, 문화유산 파괴가 경제적 파괴로 연쇄된다는 점에서 피해의 총량은 건물 손상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크다. 관광 수입 감소는 역설적으로 남은 유적의 보수 예산까지 줄여 파괴의 악순환을 가속화한다. 시리아 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내전 이전 연간 850만 명이던 관광객이 내전 후 거의 제로로 감소했고, 이에 따른 문화유산 관리 예산 삭감으로 전쟁 피해를 입지 않은 유적까지 방치되는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이스파한도 동일한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전망
단기적으로 향후 1~6개월 사이에 벌어질 일을 예측해보겠다. 이스파한 문화유산 피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지만, 그 관심이 실질적 행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솔직히 낮다고 본다. 유네스코는 이미 2026년 4월 긴급 세션을 개최했고, '이란 문화유산 위험 목록 등재'를 검토 중이지만, 이 절차 자체가 6~12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에 언론의 관심은 다른 이슈로 이동할 것이고, 이스파한은 뉴스 사이클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현실적으로 6개월 내에 일어날 가장 의미 있는 변화가 디지털 기록화 프로젝트의 가속화라고 본다. CyArk와 구글 아츠 앤 컬처, 스미소니언 디지털라이제이션 프로그램 등이 이란 측과 협력해 피해 유적의 정밀 3D 스캔을 완료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데이터는 당장의 물리적 복원에는 쓸 수 없지만 향후 복원의 기준선으로 기능할 것이다.
같은 단기 시기에 법적 전선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블루실드 인터내셔널과 국제법 전문가 그룹이 수집한 피해 증거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예비심사 청구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미국은 ICC 로마 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며, 이스라엘 역시 2002년에 서명을 철회했다. 이는 ICC가 관할권을 행사하기 극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ICC 예비심사가 개시되더라도 6개월 내에 정식 수사로 전환될 확률을 15% 이하로 본다. 다만 예비심사 개시 자체가 정치적 압력으로 기능할 수 있고, 2016년 말리 팀북투 사건의 알 마흐디 유죄 판결이 선례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판결은 ICC 역사상 최초의 문화재 파괴 전범 유죄 판결이었고, 45일 만에 완료된 약식 재판이었다는 점에서 법적 선례의 존재는 분명하다.
중기적으로 6개월에서 2년 사이의 전망은 국제 문화재 보호 체계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에 달려 있다. 나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겠다. 먼저 낙관적 시나리오(bull case)다. 유럽 의회의 '문화재 보호 강화 결의안'이 실질적 법안으로 발전하고, EU가 자체적으로 '문화재 파괴에 대한 독립 제재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경우다. 이 메커니즘이 도입된다면, EU 회원국의 군수 기업이 문화재 인접 지역 폭격에 사용된 무기를 공급한 경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반경 5km 이내의 폭격에 사용된 무기 공급자에 대한 제재를 상정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 EU가 러시아에 적용하고 있는 무기 수출 제한의 논리적 확장이다. 다만 이 시나리오의 실현 확률은 약 20%로 본다. EU 내에서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우선시하는 국가들, 특히 동유럽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본 시나리오(base case)에서는 헤이그 협약 제2의정서의 '강화된 보호' 제도가 이스파한 사태를 계기로 재논의되지만, 실질적 구속력 있는 변화보다는 '연성 규범(soft law)'의 강화에 머물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군사 표적 설정 시 문화재 영향 평가(Cultural Heritage Impact Assessment)를 의무화하는 NATO 내부 지침이 2027년까지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2017년부터 NATO는 'cultural property protection' 관련 STANAG(표준화 협정)를 운영 중인데, 이스파한 사태가 이 기준의 실질적 강화를 촉진할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분쟁 지역 세계유산 긴급 보호 프로토콜'을 기존 24시간 대응 체계에서 12시간 대응 체계로 단축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두 가지 조치는 정치적 비용이 크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확률을 약 55%로 본다.
비관적 시나리오(bear case)는 이스파한 사태가 사실상 잊혀지고, 국제 문화재 보호 체계의 이중 잣대가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고착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향후 어떤 강대국이 군사작전 중 문화재를 파괴해도, 이스파한의 선례를 들어 "그때도 아무 일 없었잖아"라는 논리가 통용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중국이 대만 해협 위기 시, 또는 러시아가 추가 영토 확장 시 문화재 파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이스파한 선례로 상쇄하려 할 가능성이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확률을 25%로 본다. 비관적이지만, 지난 20년간 이라크(2003년 국립박물관 약탈), 시리아(팔미라 파괴), 예멘(사나 구시가지 폭격)에서 반복된 패턴을 고려하면 결코 낮지 않은 확률이다. 더구나 미국 대선을 앞두고 외교 정책에서 문화재 보호가 국내 정치 이슈가 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므로, 정치적 동력 자체가 부족하다.
장기적으로 2~5년의 시계에서 보면, 이스파한 사태가 촉발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문화재 보호의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시도다. 현재의 국제 문화재 보호 체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정치적 역학에 종속되어 있다. P5(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중 어느 나라가 관련되면 거부권 때문에 실질적 조치가 불가능하다. 나는 이 구조적 한계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독립적 문화유산 보호 기구(IPCHP: International Panel on Cultural Heritage Protection)'의 설립 논의가 2028년까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환경 분야에서 독립적 국제기구인 IPCC가 정치적 의사결정과 과학적 평가를 분리하는 모델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문화유산 분야에서도 유사한 독립 기구가 피해 조사, 증거 수집, 복원 기준 설정을 정치적 압력 없이 수행할 수 있다면, 현재의 이중 잣대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상은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과 이탈리아 ICCROM(국제문화재보존복원센터)을 중심으로 학술적 논의가 진행 중이며, 202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공식 의제로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 장기 전망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의 역할 변화다. 3D 스캐닝, 위성 모니터링, AI 기반 피해 분석 같은 기술은 이미 문화재 보호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위성 이미지 분석 기업 플래닛랩스(Planet Labs)는 이스파한 폭격 전후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72시간 내에 공개했고, 이 데이터는 블루실드의 피해 평가에 핵심 근거가 됐다. 앞으로 2~5년 안에 AI 기반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이 전 세계 유네스코 세계유산 1,199곳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전망이다. 현재 유럽우주국(ESA)의 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이 이미 위성 기반 문화유산 모니터링 파일럿을 운영 중이며, 2028년까지 전면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AI 기반 피해 자동 분류 시스템은 이미 시리아와 이라크 사례에서 시범 운영되었고, 정확도가 92%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물론 모니터링 자체가 파괴를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몰랐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며, 증거 수집의 자동화는 향후 ICC 등 국제 사법기관의 소추를 크게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전망이 틀릴 수 있는 조건도 솔직히 짚어야 한다. 만약 이란-서방 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정상화되고, 포괄적 핵 합의(JCPOA)의 후속 협정이 체결된다면, 이스파한 문화유산 복원이 외교적 신뢰 구축 조치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이 경우 국제 제재 완화와 함께 문화재 복원 특별 기금이 조성되고, 일본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얀 불상 복원 지원(2003년~현재, 총 300만 달러 이상 투입) 같은 사례가 참조 모델이 될 수 있다. 또한 내가 낮게 평가한 ICC 예비심사의 진전 가능성도, 만약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이 문제를 유엔 총회에서 제기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서방의 문화재 보호 이중 잣대에 대해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왔다. 2025년 유엔 총회에서 영국의 파르테논 대리석 반환 결의안이 143대 7로 채택된 사례가 보여주듯, 문화유산 문제에서 남반구의 집단적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이스파한 사태는 그 불만을 더 강하게 결집시킬 촉매가 될 수 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구체적 제언을 남기겠다. 문화유산 보호는 정부와 국제기구만의 일이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관심의 지속'이다. 이스파한 사태에 대한 뉴스가 사라진 뒤에도 블루실드 인터내셔널, ICOMOS, CyArk 같은 단체의 활동을 팔로우하고, 피해 복원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고, 무엇보다 "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시리아 팔미라가 파괴된 2015년, 전 세계가 분노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팔미라 복원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스파한이 같은 운명을 겪지 않으려면, 분노가 사라진 뒤에도 관심이 남아야 한다. 문화유산은 한번 사라지면 어떤 기술로도 완전히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크시-에 자한 광장의 17세기 타일 하나하나에는 400년 전 이름 모를 장인의 손길이 담겨 있고, 그것은 3D 프린터로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참고 데이터
- 이스파한 등 이란 전역 유네스코 세계유산 피해 보도 — The Art Newspaper
- 이란 이스파한 전쟁 피해와 문화유산 파괴의 실상 — NPR
- 블루실드, 이란 문화유산 파괴에 잠재적 전쟁범죄 경고 — Museums Association
- 유네스코, 중동 문화유산 위협에 긴급 우려 표명 — Euronews
- 200인 이상 문화계 인사, 이란 문화유산 파괴 국제 대응 비판 성명 — The Art Newspaper
- 교전 속 이란 문화유산: 피해 현황과 잃게 될 것들 — The Conversation
- 미국·이스라엘, 이란 문화유산에 전쟁 선포했나 — Al Jaze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