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는 BTS에게 방을 하나 내줬다 — BTS는 건물에서 나갔다
한줄 요약
2027년 제69회 그래미 시상식을 위해 신설된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카테고리가 아시아 음악계의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이 카테고리는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할 것'이라는 언어 요건을 핵심 자격으로 삼고 있어, 올해 빌보드 Hot 100 1위를 기록한 BTS의 영어 곡 "Swim"이 구조적으로 자격 미달이 되는 역설을 만들어냈다. BTS는 이 카테고리뿐 아니라 일반 부문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 대한 제출을 거부하며 그래미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고, 이는 통산 후보 5회 수상 0회라는 배경 위에서 더욱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래미 아카데미 CEO Harvey Mason Jr.는 장르 부문과 일반 부문의 양립 가능성을 설명하며 규정상 정확한 반박을 내놓았으나, 기관 자체를 떠나겠다는 선택에는 답하지 못했다. 이 논쟁은 1989년 랩 부문 보이콧, 2024년 아프리카 음악 부문 신설 논란에 이은 세 번째 구조적 충돌로, 스트리밍 시대에 언어와 지역으로 음악을 분류하는 방식의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핵심 포인트
"Swim" 1위인데 자격 미달 — Best Asian Pop의 언어 기준 역설
2027년 그래미에 신설된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는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할 것"이라는 언어 요건을 핵심 자격으로 삼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아시아 퍼포머가 영어로만 노래한 곡은 이 카테고리에 제출할 수 없다. 올해 빌보드 Hot 100 1위로 데뷔한 BTS의 "Swim"은 가사가 전부 영어라서 정확히 이 조건에 걸린다. 같은 앨범 《ARIRANG》의 한국어 트랙은 자격이 되는데, 가장 큰 히트곡은 자격이 안 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규정은 "민족이나 국적이 아니라 음악 스타일이 자격을 결정한다"고 명시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기준은 언어다. 이 구조적 모순은 카테고리가 아시아 음악의 예술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의 언어를 분류하고 있다는 비판의 핵심 근거가 된다. 같은 아티스트의 같은 앨범에서 나온 곡이 가사 언어 하나로 자격이 갈리는 상황은, 이 카테고리가 분류하는 대상이 음악이 아니라 언어임을 구조적으로 증명한다. 규정이 스스로 내세운 "음악 스타일이 기준"이라는 원칙과 실제 작동 방식 사이의 괴리가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BTS 전 부문 미제출 — "칸 거부"가 아닌 "기관 이탈"의 의미
BTS는 2026년 7월 29일 멤버 일곱 명 전원이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올해 그래미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요한 건 아시안 팝 카테고리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Album of the Year, Record of the Year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 대한 제출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BTS는 통산 그래미 후보 5회에 올랐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고, 이번 결정은 그 역사적 맥락 위에서 더 큰 무게를 갖는다. 이것은 카테고리 하나에 대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그래미라는 제도 자체의 분류 방식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점에서, 단순 보이콧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선언이다. 수년간 일반 부문의 문을 두드려 온 팀이 시스템 전체를 떠나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그래미라는 기관이 음악을 평가하고 범주화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이의 제기이며, 아시아 음악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시상 기관의 분류 체계 사이의 괴리를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낸 사건이다.
Harvey Mason Jr. 반박의 기술적 정확성과 그 한계
그래미 CEO Harvey Mason Jr.는 BTS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카테고리의 취지를 적극 옹호했다. 그의 핵심 반박은 "장르 부문에 출품해도 일반 부문 후보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는 규정상 사실이다. "More categories mean more artists' work is recognized"라는 발언도 카테고리 신설의 논리로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반박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 BTS는 아시안 팝 칸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전 부문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규정의 기술적 정확성은 "이 시스템 자체에서 나가겠다"는 선택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확장인지 분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규정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라 그 규정 안에 놓이는 당사자라는 점에서, Mason의 반박은 옳되 과녁을 빗나간 셈이다. 기관이 제도의 논리로 답하는 동안 아티스트는 제도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 간극이 이번 논쟁의 핵심 긴장을 만들고 있다. 규정의 정확성이 아무리 완벽해도 당사자가 그 규정 자체를 거부하면 설득력을 잃는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다.
1989년 랩 보이콧에서 2027년 아시안 팝까지 — 38년간 반복되는 패턴
그래미가 새로운 장르 카테고리를 신설할 때마다 비슷한 충돌이 반복되어 왔다. 1989년에 Best Rap Performance를 신설하고 시상 장면을 TV 중계에서 뺐을 때, 랩 커뮤니티 전체가 보이콧으로 맞섰고 이듬해 그래미는 TV 중계에 랩 부문을 포함시켰다. 2024년에 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가 신설됐을 때도 아프리카 음악의 다양성이 하나의 칸으로 단일화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7년의 아시안 팝은 이 패턴의 세 번째 반복이다. 공통 구조는 명확한데, 비주류 장르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 기관이 별도 칸을 만들고, 당사자들은 그 칸이 인정인지 격리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이 38년째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래미의 분류 체계가 이 질문에 아직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89년에는 TV 중계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2027년에는 언어 요건으로 경계를 세우는 방식으로 — 형태는 달라졌지만 핵심 구조는 같다. 기관이 장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제한을 거는 이 이중성이 매번 충돌의 원인이 되어 왔다.
317억 달러 글로벌 시장에서 언어로 칸을 나누는 시대착오
IFPI 2026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음반 수익은 317억 달러로 11년 연속 성장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10.9% 성장으로 가장 역동적인 시장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20.1% 성장률로 독일을 제치고 세계 4위에 올라섰으며, 일본은 세계 2위 시장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Luminate에 따르면 한국은 비영어권 최대 음악 수출국으로 글로벌 4위다. 전 세계 유료 스트리밍 구독자 8억 3,700만 명의 재생 목록에서는 이미 언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시장 현실에서 시상 기관이 언어를 기준으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은 산업의 현재와 제도의 설계가 괴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아시아 음악은 별도 칸에 넣어야 할 만큼 작은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음악 경제의 핵심 성장 엔진이 됐다. 글로벌 스트리밍 수익이 전년 대비 8.8% 성장하는 시대에 청취자들은 언어가 아니라 취향에 따라 음악을 선택하고 있으며, 시상 기관이 그 현실과 맞닿지 못하는 분류 체계를 새로 만드는 건 산업의 미래보다 과거를 향한 설계라고 나는 본다.
긍정·부정 분석
긍정적 측면
- 비영어권 아시아 아티스트의 그래미 접근성 확대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활동하는 아시아 아티스트들에게 그래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경로를 제공한다. 이 카테고리가 없으면 비영어권 아시아 아티스트가 일반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BTS조차 5회 도전에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일반 부문을 뚫기란 훨씬 더 높은 벽이다. Forbes가 거명한 aespa, NewJeans, TWICE 같은 팀들에게 이 상은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유의미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런 팀들에게 Best Asian Pop은 그래미라는 브랜드에 자신의 이름을 연결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기회다. 카테고리의 설계에 논쟁이 있더라도, 비영어권 아시아 음악에 그래미 무대를 열어준다는 기능적 가치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 아시아 음악 시장 성장에 대한 공식적 제도적 인정
IFPI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음악 시장은 2025년에 10.9% 성장했고, 중국은 20.1% 성장으로 세계 4위 시장에 올라섰다. 이런 폭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래미는 오랫동안 아시아 음악을 위한 전용 카테고리를 두지 않았다.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신설은 세계 최대 음악 시상식이 아시아 음악의 성장을 독립적인 예술 범주로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상업적 성장만으로는 문화적 정당성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적 인정은 별도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라틴 음악이나 아프리카 음악과 마찬가지로, 비영어권 음악이 글로벌 음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의 일부다. 아시아 음악이 그래미 안에 공식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장르 부문과 일반 부문의 규정상 양립 가능성
그래미 규정에 따르면 장르 카테고리에 출품하는 것이 일반 부문 후보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 Harvey Mason Jr.가 명시적으로 밝혔듯이,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에 제출한 아티스트도 Record of the Year, Album of the Year 등 일반 부문에서 동시에 고려될 수 있다. 이 규정적 양립 가능성은 카테고리가 격리가 아니라 추가 기회라는 설계 의도의 근거가 된다. 2026년 그래미에서 Bad Bunny가 라틴 부문과 일반 부문 양쪽에서 활약하며 이를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아시안 팝 카테고리에서 수상한 아티스트가 같은 해 일반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는 사례가 나온다면, 장르 부문이 발판이지 게토가 아니라는 아카데미의 약속이 현실로 증명될 수 있다. 규정상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 글로벌 음악 생태계의 다양성과 가시성 확장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포함해 2027년에 신설되는 다섯 개 카테고리는 그래미가 글로벌 음악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시안 팝, 라틴 송, 전통 포크 앨범 등의 신설은 영어권 팝과 록 중심이었던 그래미의 외연을 넓히는 시도다. 그래미 시상식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 어워드이며, 여기에 비영어권 카테고리가 추가되는 것은 글로벌 음악 산업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이다. Mason Jr.가 말한 "확장"의 논리가 작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방향 자체가 축소가 아니라 확대를 향한다는 점은 인정할 부분이다. 카테고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카테고리가 없는 것보다는 비영어권 아티스트의 가시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현실적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닫힌 문보다는 논쟁이 있어도 열린 문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우려되는 측면
- 언어 기준이 예술적 평가를 대체하는 구조적 위험
이 카테고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예술적 우수성이 아니라 가사의 언어가 자격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BTS의 "Swim"이 빌보드 Hot 100 1위를 기록했어도 영어라서 아시안 팝 자격이 안 되고, 같은 앨범의 한국어 트랙은 된다는 것은 음악의 질이 아니라 가사의 언어가 분류 기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est Latin Song의 스페인어 51% 요건도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음악상이 예술의 우수성을 시상하겠다고 하면서 언어 비율로 자격을 나누는 것은 근본적 모순이다. 이 설계가 고착화되면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상을 받기 위해 언어 선택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 음악의 언어가 예술적 판단이 아니라 시상 전략의 변수가 되는 셈이다. 창작자가 상을 받기 위해 가사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음악상의 본래 목적인 예술적 우수성의 인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 "아시안 팝"이라는 라벨이 가진 단일화의 함정
K-pop, J-pop, C-pop은 음악적 스타일, 산업 구조, 문화적 맥락이 현저히 다른 장르다. 이 셋을 하나의 "아시안 팝" 카테고리에 묶는 것은 아시아 음악의 다양성을 오히려 축소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리즈 대학교의 Dorothy Finan이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요네즈 켄시 같은 아티스트는 K-pop 중심의 아이돌 프로덕션 프레임에 맞지 않는다. 2024년 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에서 나이지리아 아프로비트가 중심이 되면서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다양성이 단일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아시안 팝도 K-pop 중심으로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카테고리의 이름에 "아시아"가 들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음악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포용을 위한 분류가 역설적으로 더 좁은 시야를 강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 분류 권력이 미국 기관에 집중되는 비대칭 구조
아시아 음악이 무엇인지, 어떤 음악이 "아시안 팝"에 해당하는지를 정의하는 주체가 미국에 기반한 Recording Academy라는 점은 근본적인 권력 비대칭을 만든다. IFPI 데이터가 보여주듯 일본은 세계 2위, 중국은 4위 음악 시장이고, 한국은 비영어권 최대 수출국이다. 이 규모의 시장들이 자체적인 음악 시상 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의 분류가 글로벌 표준처럼 기능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웨슬리언 대학교의 Eric Charry가 아프리카 카테고리에 대해 미국 문화 기관의 분류 권력을 비판한 것과 같은 논리가 아시안 팝에도 적용된다. 아시아의 음악 산업이 스스로 정의하지 않은 범주 안에 놓이게 되는 이 구조는, 포용의 의도와는 별개로 문화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아시아의 거대 음악 시장들이 자체적인 시상 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미국 기관의 분류가 글로벌 기준처럼 기능하는 현실은 이 비대칭을 더욱 부각시킨다.
- BTS 미제출이 다른 아시아 아티스트에게 미치는 역설적 영향
BTS의 전 부문 미제출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그 결과가 모든 아시아 아티스트에게 동일하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BTS는 "Swim"으로 이미 영어 시장에서 주류의 위치를 확보한 팀이기에 그래미가 없어도 글로벌 영향력에 타격이 제한적이다. 반면 한국어나 일본어로만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게 Best Asian Pop은 그래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경로일 수 있다. BTS의 보이콧이 이 카테고리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면, 그 피해는 이 상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 다른 아시아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언어로 나누지 마라"는 보편성의 주장이 영어로 이미 성공한 팀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이 비영어권에서 경쟁하는 아티스트들의 현실과 얼마나 닿아 있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이 카테고리가 없어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BTS가 아니라 한국어나 일본어로만 활동하며 그래미 접근 경로가 제한된 아티스트들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의 주장과 현실적 필요 사이의 간극이 이 논쟁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다.
전망
단기적으로 가장 먼저 일어날 일은 명확하다. 2027년 2월 7일 제69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상이 처음으로 수여될 텐데, 그 자리에 BTS는 없을 것이다. Forbes는 이미 BTS가 빠진 자리에 aespa, NewJeans, BLACKPINK, TWICE, Stray Kids 같은 팀들을 잠재적 후보로 거명했다. 이 아티스트들에게는 이 카테고리가 실질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어로 경쟁하는 팀들에게 Best Asian Pop은 그래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BTS 미제출의 가장 즉각적인 역설이라고 본다. BTS가 떠나면서 이 카테고리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지만, 동시에 이 카테고리를 실제로 필요로 하는 다른 아시아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BTS의 빈자리가 다른 K-pop 팀에게 첫 번째 수상자가 될 기회를 열어주는 아이러니가 벌어질 수 있다. BTS가 만든 균열 위에서 다른 아티스트가 자신의 그래미 역사를 쓸 수도 있다는 거다. 카테고리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과 카테고리의 실질적 가치가 동시에 공존하는 상황이다.
제출 기간이 한창 진행 중인 지금, 다른 K-pop 기획사들의 움직임이 이 카테고리의 첫해 운명을 좌우한다. BTS의 결정이 업계 전체의 집단 보이콧으로 확산될지, 아니면 BTS만의 개별 행동으로 남을지에 따라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 판단으로는 업계 전체의 집단 보이콧 가능성은 낮다. 하이브 소속 다른 아티스트들도 각자의 판단이 있을 것이고, SM, JYP, YG 같은 다른 기획사들은 그래미 후보 지명이라는 마케팅 가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다. 결국 BTS 없는 아시안 팝 카테고리의 첫해가 이 상의 권위를 어느 수준에서 시작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제출 기간이 진행되는 동안,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반응도 꼼꼼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주류 음악 미디어에서 이 논쟁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다뤄지느냐에 따라 아카데미가 받는 압력의 크기가 달라진다. BTS의 미제출이 단순한 일주일짜리 뉴스에 그친다면 아카데미는 현 규정을 유지할 명분이 충분하다. 반면 시상식까지 논쟁이 이어진다면 첫 번째 수상자의 소감 순간 자체가 이 카테고리의 의미를 규정하는 결정적 장면이 될 수 있다. 수상자가 이 상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수상 소감에서 카테고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 상의 서사가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시상식 중계에서 이 카테고리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느냐도 관건인데, 1989년 랩 보이콧의 핵심이 바로 TV 중계 배제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중기적으로 가장 주목할 건 그래미 아카데미가 이 카테고리의 규정을 수정할 것인지 여부다. 나는 현재의 언어 요건이 수정 압력에 직면할 거라고 본다. "Swim" 같은 영어 곡이 아시안 팝 자격을 못 받는 역설이 이번에 워낙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수정의 방향은 둘 중 하나일 텐데, 언어 요건을 완화하는 쪽과 카테고리 이름 자체를 바꾸는 쪽이다. 만약 언어 요건을 완전히 없애면 이 카테고리는 사실상 "아시아 출신 아티스트가 부른 팝"이 되는데, 그러면 규정이 스스로 부정한 "민족이나 국적 기준"으로 되돌아가는 모순이 생긴다.
반대로 카테고리 이름을 "Best Asian-Language Pop"처럼 바꾸면 더 정직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미가 음악이 아니라 언어를 시상한다는 비판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어느 쪽이든 쉬운 해결은 아니다. 같은 시상식에 신설되는 Best Latin Song의 51% 스페인어 요건이 흥미로운 비교가 되는데, 라틴 음악 쪽은 이미 수십 년간 별도 카테고리를 운영해 온 역사가 있다. Bad Bunny가 2026년 그래미에서 Album of the Year를 수상하면서 장르 부문과 일반 부문의 공존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시안 팝이 이 경로를 밟으려면 시간과 실질적인 성공 사례가 필요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번 논쟁이 K-pop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J-pop과 C-pop 커뮤니티에서도 반응이 나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자국 음악 시장이 세계 2위 규모이면서도 그래미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이 카테고리를 기회로 보는 시각과 미국 기관의 분류에 편입되는 것을 경계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중국 시장은 20.1% 성장률로 가장 역동적이지만, 그래미와의 관계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접점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 카테고리가 아시아 음악 전체를 제대로 대표하려면 K-pop 너머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그 참여가 얼마나 이루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 아시아 음악 산업 자체의 시상 체계가 글로벌 영향력을 가질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에는 멜론뮤직어워드와 마마어워즈가 있고, 일본에는 일본골드디스크대상과 레코드대상이 있다. 이 시상식들이 아직 그래미만큼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갖추지 못했지만, 아시아 음악 시장이 계속 성장한다면 자체적인 시상 권위가 그래미의 분류 체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답이 될 수도 있다. 아시아 음악이 미국 기관의 인정을 기다리는 시대에서 자체적으로 기준을 세우는 시대로의 전환이 장기적으로 가능하다. 그래미가 변하지 않으면 아시아 음악은 그래미 없이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래미의 글로벌 대표성 자체가 도전받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근본적인 변화가 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트리밍이 음악 소비의 중심축이 된 지금, 언어와 지역으로 음악을 분류하는 방식 자체의 시효가 다해가고 있다. IFPI에 따르면 전 세계 유료 스트리밍 구독자가 8억 3,700만 명이고, 스트리밍 수익은 전년 대비 8.8% 성장했다. 이 구독자들의 재생 목록에는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곡이 뒤섞여 있다. 알고리즘은 언어가 아니라 취향으로 음악을 추천한다. 청취자가 이미 언어의 칸을 허물고 있는 시대에 시상 기관이 그 칸을 새로 세우는 건 시대 흐름과 명백히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역사가 힌트를 준다. 1989년, 그래미가 Best Rap Performance를 신설했을 때 시상 장면을 TV 중계에서 빼버렸다. 랩 커뮤니티 전체가 보이콧으로 맞섰다. 상을 만들어 놓고 중계에서 빼는 건 인정이 아니라 모욕이라는 거였다. 그 다음 해, 그래미는 TV 중계에 랩 부문을 포함시켰고 1991년에는 랩 부문을 두 개로 세분화했다. 장르가 자신의 힘을 증명하자 기관이 따라간 것이다.
나는 아시안 팝도 비슷한 궤도를 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1989년에 랩은 미국 내부의 음악이었다. 아시안 팝은 미국 밖에서 온 음악이다. 미국 기관이 자국 장르를 수용하는 것과 해외 장르를 분류하는 것은 권력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 차이가 결과를 어떻게 바꿀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1989년 보이콧이 제도를 움직였듯이, BTS의 미제출도 최소한 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소셜 미디어 시대라는 점도 1989년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1989년에 랩 커뮤니티의 보이콧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2026년에 BTS의 발표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 팬덤에 즉각 전달됐다. ARMY라는 조직화된 팬 커뮤니티의 존재는 이 이슈를 단순한 업계 뉴스에서 글로벌 문화 담론으로 확대시켰다. 팬들이 그래미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의견을 표명하고 해시태그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은, 기관에 대한 압력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38년 전의 보이콧이 업계 내부의 항의였다면, 오늘의 미제출은 수천만 팬이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참여하는 공개적 사건이다.
2024년에 신설된 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가 일종의 미리보기라면 결과는 혼재돼 있다. Tyla가 수상하면서 아프리카 음악의 그래미 가시성은 확실히 올라갔다. 그러나 웨슬리언 대학교의 음악학자 Eric Charry는 이 카테고리가 나이지리아 아프로비트 중심으로 좁아지면서 대륙 전체의 음악적 다양성을 단일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시안 팝에도 같은 위험이 있다. K-pop이 이 카테고리의 사실상 중심이 되면, J-pop이나 C-pop, 동남아시아의 팝 음악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 포용을 위해 만든 칸 안에서 또 다른 위계가 생기는 거다.
그래미의 역사를 보면 규정 변경은 드물지 않다. 아카데미는 매년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폐지하고 합치고 쪼개는 작업을 해왔다. 2012년에 31개 카테고리를 한꺼번에 줄였고, Best World Music Album은 2020년에 Best Global Music Albu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선례들은 아시안 팝 카테고리의 규정이 영구불변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수정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가 아니라 수정의 동력이 충분한지다. BTS의 미제출이 그 동력이 될 수 있지만, 한 팀의 결정만으로 거대한 기관의 규정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만약 그래미가 BTS의 미제출 이후 실질적 개혁에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언어 요건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시안 팝을 세분화하거나, 지역 기반 카테고리를 장르 기반으로 재편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 경우 BTS의 보이콧은 1989년 랩 보이콧처럼 제도를 움직인 역사적 사례로 기록된다. 다만 이런 변화가 오려면 BTS뿐 아니라 다른 영향력 있는 아시아 아티스트들도 목소리를 내야 하고,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규정 개정을 밀어붙일 동력이 있어야 한다.
BTS가 이번에 전 부문을 거부했지만 이것이 영구적 결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카테고리의 규정이 개선되거나 아카데미가 아시아 음악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한다면 BTS가 미래에 복귀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반대로 BTS의 미제출이 일시적 제스처에 그치고 다음 해에 별다른 변화 없이 돌아온다면, 이번 사건의 메시지는 상당히 희석될 수 있다. 나는 BTS의 다음 행보가 이번 미제출 선언이 일시적 제스처였는지 구조적 전환점이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거라고 본다.
반대로 아카데미가 별다른 조치 없이 현 규정을 유지한다면, 아시안 팝 카테고리는 BTS 없이 첫해를 시작하고 그 부재 자체가 이 상의 권위에 영구적인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K-pop의 가장 큰 이름이 참여를 거부한 상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궁극적으로 이 카테고리가 살아남을 거라고 본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경쟁하는 아시아 아티스트들에게 이 상이 실질적 가치를 제공한다면, BTS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카테고리 자체는 존속할 수 있다. 결국 이건 BTS 대 그래미의 대결이 아니다. 글로벌 음악 산업이 경계를 긋는 방식에 대한, 훨씬 오래 걸릴 대화의 시작이다. 나는 그 대화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논쟁은 그래미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브릿 어워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빌보드 뮤직 어워드 같은 다른 주요 시상식도 비영어권 음악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BTS의 그래미 미제출은 이 더 큰 재편의 첫 번째 결정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고, 한 아티스트의 선택이 하나의 시상식을 넘어 글로벌 음악 산업의 분류 패러다임 전체에 질문을 던진 셈이다.
출처 / 참고 데이터
- 2027 그래미 신설 카테고리 공식 발표 (Recording Academy)
- Harvey Mason Jr. 공식 입장 전문 (Music Business Worldwide)
- BTS 그래미 노미네이션 내역 (Recording Academy)
- IFPI Global Music Report 2026 (IFPI)
- 아시안 팝 라벨 문제 학술 분석 (The Conversation)
- 아프리카 카테고리 선례 분석 (The Conversation)
-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카테고리 상세 (Wikipedia)
- 《ARIRANG》 앨범 정보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