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품격 관광'이 계급 검열이라고 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것도 아니다
한줄 요약
2026년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에서 동시에 확산된 '품격 관광(quality tourism)' 정책은 관광객 총량을 줄이는 장치가 아니라 지불 능력이 낮은 방문객을 선별적으로 걸러내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발리 주지사가 외국인의 최근 3개월 통장 잔고를 심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일본이 국제관광여객세를 1,000엔에서 3,000엔으로 인상했으며, 인도네시아 이민 당국이 상반기에만 342명을 강제추방한 일련의 조치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 언어 아래 동일한 소득 선별 논리를 공유한다.
특히 2025년 유럽 전역에서 여행 지출이 9.7% 늘어날 때 방문객 수는 3.2% 증가하는 데 그친 통계는, 정책의 실제 메시지가 "관광객이 너무 많다"가 아니라 "돈을 적게 쓰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글이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관광객의 계층 구성이 아니라 관광 수익이 국제 호텔 체인과 예약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누출(leakage) 구조에 있으며, 동료심사 연구가 추정한 개발도상국의 40~50% 누출률과 태국의 약 70% 추정치는 고가 관광으로의 전환이 현지 커뮤니티의 몫을 자동으로 늘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품격 관광 담론은 계급적 배제라는 윤리적 문제와 분배 구조라는 경제적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고, 후자를 방치한 채 전자만 실행할 때 그 정책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관광 자본을 위한 규제로 귀결된다.
핵심 포인트
'품격 관광'은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통장 잔고 심사다
발리 주지사 와얀 코스터는 인도네시아 국영통신사를 통해 2026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의 최근 3개월 저축 계좌 잔고를 심사해 입국을 통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는 숫자가 아니라 품질에 집중하겠다고 명시했는데, 여기서 품질의 한 구성요소로 직접 지목된 것이 바로 방문객의 예금 잔액이다. 통상 정책 담론에서 품질이라는 단어는 서비스 수준이나 체류 만족도, 환경 부하 같은 지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번 발언은 그 단어의 지시 대상이 관광객 본인의 재산 상태임을 스스로 밝혀버렸다. 정책의 완곡어법이 이렇게까지 투명하게 벗겨진 사례는 드물며, 이는 품격 관광이 지불 능력에 따른 선별이라는 해석을 추론의 영역이 아니라 인용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 더구나 이 발언은 익명의 관료가 흘린 배경 설명이 아니라 국영통신사가 보도한 최고위 지방정부 수장의 공개 발언이므로, 오해나 과장이라는 방어선조차 성립하기 어렵다. 나는 이 한 문장이 계급 검열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박 가능성을 사실상 봉쇄했다고 본다. 정책의 숨은 의도를 추측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며, 남은 논쟁은 그 선별이 정당한가라는 규범의 문제로 곧장 넘어간다.
지출 증가율이 방문객 증가율을 앞지르는 현상이 진짜 메시지를 드러낸다
2025년 유럽 전역의 여행 지출은 전년 대비 9.7% 증가한 반면 방문객 수는 3.2% 증가에 그쳤다. 스페인만 따로 보아도 국제관광객 9,680만 명이 3.2% 늘어나는 동안 이들의 지출은 1,350억 유로로 6.8% 늘어 방문객 증가율의 약 두 배 속도를 기록했다. 오버투어리즘이 순전히 물리적 밀도의 문제였다면 3.2%라는 완만한 증가율에서 대규모 반관광 시위가 터지는 현상은 설명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 수치를 고지출 관광객은 이미 빠르게 늘고 있는데 저지출 관광객이 아직 남아 있다는 관점에서 읽으면 각국 정부가 보이는 조급함이 단번에 납득된다. 포브스의 한 기자가 유럽은 더 적은 관광객이 더 많은 돈을 쓰기를 원한다고 직접 요약한 것도 같은 맥락이며, 이는 정책의 목표 함수가 방문객 수의 최소화가 아니라 1인당 지출의 최대화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각국 정부가 실제로 최적화하는 변수는 혼잡도가 아니라 객단가이며, 혼잡은 그 최적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서사에 가깝다. 나는 이 반직관적 해석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본다.
소득 기준선은 제도 안에 이미 숫자로 박혀 있다
발리에서 합법적으로 장기 체류하려면 원격근무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 비자는 연 소득 6만 달러 이상의 증빙을 요구한다. 그 아래 소득의 프리랜서와 크리에이터에게 남는 선택지는 최장 180일짜리 단기 콘텐츠 크리에이터 비자뿐이다. 동시에 현행 규정은 스폰서 콘텐츠, 브랜드 협업, 숙박을 대가로 한 촬영은 물론 보수를 받지 않은 홍보 촬영까지 모두 노동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소득 6만 달러 선이 체류 자격을 가르는 칼날이 되며, 이는 단속의 선별성이 관행이 아니라 법조문에 내장되어 있음을 뜻한다. 인도네시아 이민 당국이 4월 태스크포스 출범 시점 165명에서 상반기 누계 342명으로 추방자를 늘려간 것은 이 칼날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주목할 점은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기간에 머무는 고소득 체류자는 같은 임대 시장 압력을 만들어내면서도 법의 언어 안에서 완전히 무해한 존재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즉 규제는 행위의 해악이 아니라 소득 구간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있다. 나는 불법 노동 단속이라는 명분의 형식적 정당성과 그 명분 안에 심어진 소득 필터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판단한다.
정액 관광세는 형식적 평등 뒤에 역진성을 숨긴다
일본이 국제관광여객세를 1,000엔에서 3,000엔으로 인상하면서 국적과 소득을 묻지 않고 모두에게 동일 금액을 부과한 것은 형식적으로 완벽하게 중립적이다. 그러나 정액세는 바로 그 무차별성을 통해 실질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세목이며, 이는 역진세라는 이름으로 경제학에 확립된 개념이다. 총예산 40만 원으로 배낭여행을 온 학생에게 3,000엔은 하루치 식비를 통째로 잡아먹는 금액이지만, 비즈니스석으로 입국한 여행자에게는 공항 커피 한 잔 값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날 단기 관광비자 수수료가 3,000엔에서 15,000엔으로 다섯 배 오른 것을 함께 놓고 보면, 이 조치들이 겨냥하는 소득 구간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처럼 일본을 짧고 자주 방문하는 여행 문화가 자리 잡은 시장에서는 인상분이 왕복마다 반복 부과되므로 저비용 여행자의 누적 부담이 특히 커진다. 세수 측면에서 보면 이 설계는 대단히 합리적인데, 3,000엔은 수요를 꺾기에는 너무 작고 연간 세수를 500억 엔에서 1,200억 엔으로 불리기에는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역진성이 의도된 것인지 무신경의 결과인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저소득 여행자만 걸러내는 필터로 기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제기구의 공식 권고에도, 학술 근거에도 소득 선별은 없다
유엔 관광기구가 오버투어리즘 대응으로 제시한 공식 전략 목록에는 방문객의 소득이나 재산을 심사하라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 담긴 것은 혼잡의 공간적 분산, 시간적 분산, 신규 명소 개발, 데이터 기반 모니터링 같은 수단들이다. 교토의 관광숙박 밀집도를 공간 분석한 동료심사 연구는 관광 압력이 주요 역과 세계유산 인근에 지리적으로 집중된다는 사실을 실증했고, 히가시야마에서 외국인 방문객이 66% 늘 때 일본인 방문객은 12% 줄었다. 부유한 관광객이라고 해서 유명 사찰을 피해 한적한 골목으로 흩어지지는 않으므로, 저비용 여행자를 걸러내면 혼잡이 완화된다는 인과관계는 학술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가 관광일수록 상징적 랜드마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소득 선별은 핫스팟의 밀도를 그대로 두거나 악화시킬 수도 있다. 정책이 국제기구의 권고 목록에도 없고 실증 연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 수단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설명하는 변수는 효과가 아니라 정치적 비용일 것이다. 나는 각국이 채택한 정책이 지속가능관광 프레임이 아니라 자체적인 계급 선별 논리를 따르고 있다고 본다.
진짜 표적은 관광객의 지갑이 아니라 수익이 새는 배관이다
계급 검열이라는 비판조차 여전히 누가 오느냐가 문제라는 상대방의 전제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 현지 주민의 소득을 결정하는 것은 방문객의 계층 구성이 아니라 그들이 쓴 돈이 어느 경로로 어디에 귀속되느냐, 즉 관광 수익의 누출 구조다. 2024년 발표된 동료심사 리뷰에 따르면 유엔무역개발회의 추산 개발도상국의 누출률은 40~50%인 반면 선진국은 10~20%이며, 태국은 약 70%, 카리브해 지역은 최대 80%에 이른다는 추정치가 제시된다. 더 결정적인 것은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처럼 고가 관광일수록 항공사와 국제 체인과 예약 플랫폼을 거쳐 수익이 빠져나가는 구조가 강화된다는 점이며, 켄트대 마크 햄프턴의 길리 트라왕안 사례연구는 오히려 백패커 관광이 지역 경제 연계가 강하고 누출이 적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이는 특정 섬의 사례연구이므로 전 세계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정직하게 밝혀둔다. 그럼에도 지불 능력이 높은 관광객으로 갈아탄다고 누출 파이프가 저절로 좁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긍정·부정 분석
긍정적 측면
- 오버투어리즘의 고통은 실재하며 개입은 정당하다
지난 10년간 바르셀로나의 임대료가 약 70% 오르고 스페인 정부가 규정을 위반한 에어비앤비 숙소 6만5천 건에 삭제 명령을 내려야 했던 상황은 엄살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생활의 붕괴다. 주거비 상승, 상권의 기념품점화, 공공 인프라의 과부하는 관광 압력과 실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교토의 히가시야마에서 외국인 방문객이 66% 늘어나는 동안 일본인 방문객이 12% 줄어든 것은, 지역 주민이 자기 동네에서 물리적으로 밀려나는 과정이 통계로도 포착된다는 뜻이다. 남유럽 여러 도시에서 여름마다 반복되는 시위 역시 정치적 유행이 아니라 임계점을 넘은 주민들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자체가 계급적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결론은 게으른 반대이며 피해자를 방치하는 태도다. 유엔 관광기구가 오버투어리즘을 지속가능하지 않은 관광의 한 발현이라고 규정한 것도 개입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나는 개입의 필요성 자체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며, 쟁점은 오직 규제가 어디를 겨누느냐에 있다고 판단한다.
- 가격을 통한 조절은 최소한 재원을 남긴다
물리적 수용력이 명백히 한계에 도달한 목적지에서 가격을 통한 수요 조절은 경제학적으로 가장 예측 가능한 수단이다. 베네치아의 광장이나 교토의 특정 골목처럼 절대적 공간이 부족한 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배분이 일어나야 하며, 추첨이나 예약제 역시 나름의 불공정을 낳는다. 관광세를 통한 조절은 최소한 그 세수가 지역으로 환류될 통로를 만든다는 점에서 단순한 진입 차단보다 우월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출국세 증액분이 오버투어리즘 대책과 인프라 강화 재원으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은 이 논리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반대로 소득 증빙이나 잔고 심사처럼 아무 재원도 남기지 않는 순수 배제 장치와 비교하면, 관광세는 적어도 걷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사후에 추적하고 따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재원의 사용처를 공개하고 지역 주민에게 귀속시키는 설계가 뒷받침된다면, 관광세는 배제가 아니라 재분배의 도구로 재해석될 여지도 있다. 나는 이 방향 자체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인정하며, 다만 그것을 품격이라는 언어로 포장하는 것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 정책 언어가 노출되면서 대중의 프레임이 이동하고 있다
발리 주지사가 통장 잔고 심사를 공언한 것처럼 정책의 속내가 육성으로 드러나는 순간, 지속가능성이라는 포장은 오히려 설득력을 잃는다. 포브스의 기자가 유럽은 더 적은 관광객이 더 많은 돈을 쓰기를 원하며 그것이 실무에서 품격 관광이 뜻하는 바라고 건조하게 요약한 것 역시 같은 노출의 사례다. 올여름 남유럽 시위의 요구사항이 관광객을 줄여달라에서 주거를 돌려달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노출이 만들어낸 결과로 보인다. 관광객 개인을 표적으로 삼는 운동은 정부에게 손쉬운 출구를 제공하지만, 임대 시장과 플랫폼을 표적으로 삼는 운동은 구조를 건드리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스페인이 위법 숙소 6만5천 건에 삭제 명령을 내리고 바르셀로나가 2028년 11월까지 단기임대 허가를 전면 만료시키기로 한 것은 정확히 이 압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프레임이 이동하면 정책의 표적도 함께 이동하며, 이는 품격 관광 담론의 정치적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나는 이 프레임 전환이 향후 2년간 가장 주목해야 할 긍정적 신호라고 본다.
- 누출 구조라는 표적이 이미 학술적으로 특정되어 있다
관광 수익 누출은 막연한 직관이 아니라 측정되고 동료심사를 거친 개념이며, 개발도상국 40~50%, 선진국 10~20%라는 추정 구간까지 정리되어 있다. 표적이 특정되어 있다는 것은 정책 수단 역시 구체화할 수 있다는 뜻이며, 예약 플랫폼 수수료에 대한 원천징수나 리조트의 지역 식자재 의무 조달 비율, 신규 숙박시설의 현지인 지분 최소 요건 같은 설계가 실제로 검토 가능하다. 관광객을 걸러내는 정책과 달리 이 수단들은 방문객의 계층과 무관하게 지역의 몫을 늘리므로 윤리적 부담도 훨씬 적고, 여행자에게 죄책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반발도 작다. 협상력이 약한 소규모 도서국이나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방정부는 이를 시도할 실질적 유인을 갖는데, 누출을 막지 못하면 관광 수입이 아무리 늘어도 지역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출률이 70%로 추정되는 태국이나 80%까지 거론되는 카리브해는 그만큼 개선의 여지도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경로가 좁지만 분명히 열려 있으며,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확산 속도는 관광세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고 본다.
우려되는 측면
- 지속가능성 언어가 계급 배제를 도덕적으로 세탁한다
환경과 주거라는 정당한 명분을 앞세우면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선별을 비판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 저비용 여행자를 배제하는 조치에 반대하는 순간 환경 파괴와 주민 축출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프레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저항의 언어까지 선점해버리는 방식이며, 정책이 교정될 기회 자체를 봉쇄한다. 실제로 발리 단속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불법 노동을 옹호하느냐는 반문 앞에서 쉽게 무력화됐고, 무비자 상태의 협찬 촬영이 형식적으로 이민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그 반문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단속의 정당성과 단속의 선별성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고가 리조트 투숙객이나 투자 비자 소지자가 같은 기간 같은 지역에서 임대 시장에 동일한 압력을 가해도 법의 언어 안에서 무해하게 남는다는 사실은 이 프레임 안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다. 유엔 관광기구의 공식 대응전략 목록에 소득 심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해도, 지속가능성이라는 상위 명분이 그 반론을 흡수해버린다. 나는 이 담론적 봉쇄가 정책의 실질적 내용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부작용이라고 본다.
- 저가·장기 체류 여행자의 지역 경제 기여가 체계적으로 과소평가된다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노점에서 식사하고 현지 스쿠터를 빌리는 여행자의 지출은 액수는 작지만 거의 전액이 지역 안에서 순환한다. 반면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투숙객의 훨씬 큰 지출은 항공사, 국제 체인, 예약 플랫폼을 거치며 상당 부분이 목적지 밖으로 빠져나간다. 켄트대 마크 햄프턴의 길리 트라왕안 사례연구는 백패커 관광이 로컬 소유와 고용 비중이 높아 대형 리조트보다 누출이 적다는 결론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특정 섬의 사례라는 한계는 분명하되 정책이 참조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1인당 지출액이라는 단일 지표로 관광객의 가치를 평가하는 순간, 지역 소상공인을 실제로 먹여 살리는 쪽이 배제 대상으로 분류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더구나 장기 체류자는 단기 방문객보다 계절 변동을 완화해주고 비수기 매출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기여는 1인당 지출 통계에 전혀 잡히지 않는다. 나는 측정 지표의 선택이 이미 정책의 결론을 결정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 고가 관광으로의 전환은 지역 고용을 오히려 축소시킬 수 있다
고가 관광은 본질적으로 노동집약도가 낮다. 저가 관광객 100명을 상대하던 노점과 소규모 숙소 여러 곳이, 고가 관광객 20명을 받는 리조트 한 곳으로 대체되는 방식으로 산업이 재편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1인당 관광 지출과 총 관광 수입이라는 지표는 개선되지만 지역 고용과 소상공인 수는 감소한다. 켄트대 마크 햄프턴의 길리 트라왕안 사례연구가 보여주듯 백패커 경제는 로컬 소유와 로컬 고용 비중이 높은 반면, 대형 리조트는 동일한 매출을 훨씬 적은 인력과 훨씬 높은 수입 의존도로 처리한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가 2026년 관광이 12조 달러를 기여하고 3억7,600만 개 일자리를 지탱할 것으로 전망하는 상황에서, 총액 지표의 개선은 고용 구조의 악화를 손쉽게 가려준다. 즉 관광 수입이 늘었다는 헤드라인과 동네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체감이 동시에 참일 수 있으며, 정책 평가가 전자만 본다면 후자는 통계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나는 이 통계적 착시가 향후 몇 년간 품격 관광 정책의 성공 사례로 잘못 인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 누출 구조를 방치하면 어떤 관광객을 받아도 결과는 같다
관광 수익이 국제 자본으로 빠져나가는 배관을 그대로 둔 채 방문객의 계층만 바꾸는 것은 문제의 위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예약 플랫폼의 수수료, 리조트의 식자재 수입 의존, 숙박시설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라는 세 개의 파이프가 유지되는 한 지역에 남는 몫의 비율은 방문객 구성과 거의 무관하게 결정된다. 누출률이 약 70%로 추정되는 태국이 정작 300바트 입국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우선순위 착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고가 관광일수록 국제 체인 의존도가 높아 누출 비율이 커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전환은 지역의 몫을 늘리기는커녕 줄일 수 있다. 1인당 지출이 두 배가 되어도 누출률이 함께 올라가면 지역에 남는 절대 금액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감소하며, 이 산수는 어떤 정책 브리핑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품격 관광 논쟁 전체에서 가장 조명받지 못한,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실패 지점이라고 본다.
- 억제세로 도입된 관광세는 세수 항목으로 정착하고 가격 장벽은 총량을 줄이지 못한다
관광세가 혼잡 억제를 명분으로 도입되지만 금액이 수요를 꺾을 만큼 크지 않게 설계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도를 드러낸다. 일본의 3,000엔은 도쿄행 항공권 가격의 1~2% 수준이어서 방문 결정을 바꾸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세수를 500억 엔에서 1,200억 엔으로 불리기에는 충분히 크다. 베네치아가 당일 입장료 적용일을 54일에서 60일로 늘렸음에도 일평균 유료 방문객이 16,676명에서 13,046명으로 줄어드는 데 그쳤고 최고 혼잡일에는 24,951명이 몰렸다는 사실은 소액 가격 장벽의 총량 억제 효과가 얼마나 미미한지 보여준다. 결국 방문객이 줄지 않았다는 결과는 효과가 없었으니 더 올리자는 논리로 재활용되며, 억제세가 세수 항목으로 정착하는 이 경로는 여러 목적세에서 반복 관찰돼온 패턴이다. 나는 관광세가 이미 그 경로에 진입했고, 그 과정에서 걸러지는 사람은 언제나 저소득 여행자뿐이라고 본다.
전망
앞으로 여섯 달, 그러니까 2026년 하반기에 벌어질 일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다. 일본의 출국세 3배 인상은 이달 막 시행됐기 때문에 연말쯤이면 첫 세수 통계와 방문객 통계가 나란히 나올 것이다. 나는 세수는 예상대로 500억 엔에서 1,200억 엔 근처까지 불어나고 방문객 수는 거의 줄지 않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3,000엔은 도쿄행 항공권 가격의 1~2% 수준이라 수요를 꺾기엔 너무 작고 재정을 채우기엔 충분히 크다. 그리고 바로 그 결과가 혼잡 완화 효과가 없었으니 더 올리자는 논리로 재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억제세로 도입돼 세수 항목으로 정착하는 건 목적세의 오래된 습성이다.
한국 여행자에게 이 예측은 구체적인 청구서로 도착한다. 일본을 자주 오가는 사람일수록 인상분을 여러 번 부담하게 되고, 연 4회 왕복하면 추가 부담만 8,000엔이 넘는다. 그런데 이 비용은 특급 호텔 이용객보다 저비용 항공과 게스트하우스를 쓰는 쪽에서 훨씬 크게 체감된다. 나는 앞으로 한두 해 안에 국내 여행 커뮤니티에서 "이제 일본 주말치기는 계산이 안 맞는다"는 말이 흔해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정책은 이미 의도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아무도 한국인을 겨냥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걸러진 사람의 소득 분포는 정확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을 것이다.
베네치아가 이미 그 예고편을 보여줬다. 당일 입장료 적용 일수를 54일에서 60일로 늘렸는데, 일평균 유료 방문객은 2024년 16,676명에서 2025년 13,046명으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 최고 혼잡일이던 5월 2일에는 24,951명이 돈을 내고 들어왔다. 상주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하루에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몇 유로짜리 가격 장벽은 총량을 의미 있게 줄이지 못한다. 다만 그 장벽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나는 이 실증이 향후 2년간 품격 관광 정책의 성적표를 미리 채점해놓은 것이라고 본다.
같은 기간 발리의 통장 잔고 심사가 실제로 집행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태국의 300바트 입국세를 보라. 2023년에 승인해놓고 세 차례 넘게 미루다 아직도 시행일이 확정되지 않았다. 관광세와 입국 규제는 선언은 요란한데 집행은 굼뜬 정책군에 속한다. 발표 시점에 정치적 이득을 다 회수하고 나면 집행할 유인이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나는 발리의 잔고 심사도 전면 시행보다는 비자 심사 단계에 조용히 녹아드는 방식으로 안착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추방자 통계에는 잡히지 않으면서 효과는 더 커진다. 상반기 342명이라는 숫자는 오히려 가장 눈에 잘 띄는 형태의 단속이었을 뿐이다.
유럽 쪽 단기 전망은 조금 다르다. 남유럽의 여름 시위는 계절적이라 가을이면 잦아들겠지만, 요구사항이 관광객을 줄여달라에서 주거를 돌려달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건 프레임의 이동이고, 나는 이 이동이 이 논쟁 전체에서 가장 희망적인 신호라고 본다. 관광객을 표적으로 삼는 운동은 정부에게 손쉬운 출구를 주지만, 임대 시장과 플랫폼을 표적으로 삼는 운동은 그렇지 않다. 스페인이 6만5천 건의 위법 숙소에 삭제 명령을 내리고 바르셀로나가 2028년 11월까지 단기임대 허가를 전면 만료시키기로 한 것은 정확히 이 압력의 산물이다. 이 정책이 투자 철수 위협을 견디고 완주하는지가 향후 2년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중기, 그러니까 앞으로 6개월에서 2년 사이에는 관광세의 표준화가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나라마다 출국세, 입국세, 숙박세, 도시세, 전자여행허가 수수료가 제각각이지만 이 항목들은 서로를 빠르게 모방한다. 일본의 3배 인상, 태국의 입국세 재추진, 발리의 부담금 강화는 각각 독립 사건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 나는 2028년 즈음이면 중견 관광국 표준 패키지라고 부를 만한 조합이 굳어질 것으로 본다. 대략 입출국 단계에서 1인당 2~5만 원, 숙박 단계에서 1박당 1~3천 원을 걷는 형태다. 이 정도 금액은 고소득 여행자의 행동을 바꾸지 못하고, 저소득 여행자의 여행 횟수만 한두 번 줄인다.
같은 기간에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재편될 것이다. 2020년대 초반 각국이 앞다퉈 도입할 때의 논리는 돈은 밖에서 벌고 소비는 여기서 하니 이득이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들이 주거비를 밀어 올린다는 반대 논리가 우세해지고 있다. 나는 노마드 비자가 사라지기보다 소득 요건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발리의 연 소득 6만 달러 증빙 요건이 사실상의 국제 표준이 되고, 여기에 현지 임대 대신 지정 레지던스 거주 요구, 콘텐츠 수익 활동에 대한 별도 허가가 얹히는 식이다. 이건 노마드 정책의 폐지가 아니라 노마드 정책의 계급 필터링이며, 이미 시범 운영 중인 것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한국에서도 워케이션과 지역 살아보기를 장려하는 흐름이 있는 만큼, 같은 질문이 곧 우리 쪽으로도 넘어온다.
정말 흥미로운 변수는 누출 구조를 겨냥한 실험이 어디서 먼저 나오느냐다. 나는 이 실험이 관광 대국이 아니라 협상력이 약한 소규모 도서국이나 지방정부에서 먼저 나올 것으로 본다. 큰 나라는 국제 체인을 건드릴 유인이 적지만, 관광 외에 산업이 없는 지역은 누출을 막지 못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플랫폼 예약 수수료에 대한 원천징수, 리조트의 지역 식자재 의무 조달 비율, 신규 숙박시설의 현지인 지분 최소 요건 같은 형태가 유력하다. 누출률이 70%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 태국이나 80%까지 거론되는 카리브해가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이런 규제가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확산 속도는 관광세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반대로 첫 시도가 투자 철수로 응징당하면 향후 10년간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2년에서 5년 뒤의 그림은 두 갈래로 갈린다. 기본 시나리오는 몰디브화다. 방문객 수는 통제되고 객단가는 올라가고, 관광지는 리조트 단지와 그 바깥의 저임금 배후지로 이원화된다. 지표상으로는 성공이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는 2026년 관광이 세계 GDP의 9.9%인 12조 달러를 기여하고 전체 경제성장률 2.4%를 앞지르는 3.2%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산업은 위축되는 게 아니라 팽창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가 총량을 줄일 이유는 애초에 없고, 선별을 통해 수익만 극대화할 유인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지금의 정책 조합이 그대로 굴러가면 상당수 목적지가 이 경로를 밟을 것으로 본다.
낙관 시나리오는 소유 구조의 전환이다. 관광객을 걸러내는 대신 수익의 귀속을 바꾸는 길이다. 협동조합형 숙박, 지역 소유 관광 인프라, 플랫폼 수수료의 지역 환류가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방문객이 배낭족이든 억만장자든 큰 상관이 없어진다. 어차피 돈은 동네에 남는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려면 두어 개의 상징적 성공 사례가 먼저 나오고, 그 사례가 정치적으로 복제 가능해져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단기임대 전면 폐지가 2028년에 실제로 완주된다면 그것이 첫 번째 증거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확률을 높게 보지는 않는다. 다만 불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비관 시나리오는 이렇다. 관광세와 입국 규제는 계속 강화되는데 누출 구조는 그대로 남고, 동시에 기후 규제가 항공료를 밀어 올린다. 그러면 여행은 조용히 20세기 중반으로 되돌아간다. 다시 부유층의 취미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하는데, 관광객 1인당 지출은 늘지만 목적지의 고용은 줄어든다. 고가 관광은 노동집약도가 낮기 때문이다. 저가 관광객 100명이 먹여 살리던 노점과 게스트하우스 여러 곳이, 고가 관광객 20명을 받는 리조트 한 곳으로 대체되는 식이다. 지역 경제 지표는 좋아지고 지역 사람들의 삶은 나빠지는, 통계와 체감이 정반대로 갈라지는 상황이 온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결코 낮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있다고 답하겠다. 다만 그것은 가난하게 여행하라거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게 아니다. 돈이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의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국제 체인 대신 현지인이 소유한 숙소를 고르고, 플랫폼 밖에서 직접 예약하고, 리조트 안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개인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배관의 방향을 바꾸는 아주 작은 표다. 그리고 정책 논쟁에서 관광객을 줄이자는 말이 나올 때마다 누구의 관광객을 줄이자는 건가를 되묻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지금 가장 부족한 질문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반론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져둔다. 누출 구조를 고치는 게 정말 관광객 총량 관리보다 우선인가. 교토의 좁은 골목이나 베네치아의 광장처럼 물리적 수용력이 이미 한계인 곳에서는, 돈이 어디로 흐르든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나는 이 반론이 타당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그런 곳은 생각보다 적고, 대부분의 목적지에서 너무 많다는 감각은 밀도가 아니라 박탈감에서 온다. 내 집 앞 가게가 기념품점으로 바뀌고 내 월세가 10년 새 70% 오를 때 사람들은 관광객이 많다고 느낀다. 그 박탈감의 원인은 방문객의 머릿수가 아니라, 그들이 두고 간 돈이 내 동네를 그냥 지나쳐 갔다는 사실이다. 통장 잔고를 검사해야 할 대상은 입국장에 선 여행자가 아니라, 그 여행자의 돈을 받아 국경 밖으로 송금하는 법인이다.
출처 / 참고 데이터
- Bali to screen tourists' finances under quality tourism plan — ANTARA 뉴스
- Japan triples departure tax in push to combat overtourism — 재팬 타임스
- More Protests Show The High Cost Of Overtourism In Europe — 포브스
- Economic leakages in tourism: A comprehensive review of theoretical and empirical perspectives — Chaitanya & Swain
- Backpacker Tourism and Economic Development: Perspectives from the Less Developed World — 마크 햄프턴, 켄트대학교
- Overtourism? Understanding and Managing Urban Tourism Growth beyond Perceptions — 유엔 관광기구
- Bali launches Dharma Dewata task force as 165 foreigners deported — 더 발리 타임스
- Bali tightens immigration rules: foreign influencers and content creators — 왓츠 뉴 인도네시아
- Venice daytripper fee to return in 2026 — 유로뉴스
- Spain orders removal of more than 65,000 Airbnb tourist rentals — 유로뉴스
- Thailand to collect 300 baht entry fee from foreign tourists — 카오솟 잉글리시
- Global Travel & Tourism growth to outpace wider economy — 세계여행관광협의회
- Tourism-accommodation intensity hotspots and spatial concentration in Kyoto — 사이언스다이렉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