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의 '보편적 가치'는 보편적이지 않다 — 부산 회의가 인정해야 할 불편한 진실
한줄 요약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이 내세우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라는 기준이 1972년 서구 강대국이 설계한 유럽식 미학의 산물이라는 구조적 비판이 50년 넘게 이어져왔다. 유럽 문화유산 473개 대 아프리카 문화유산 63개라는 7.5대 1의 격차는 아프리카 유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준 자체가 유럽 성당과 궁전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 논점이다. 2026년 7월 13일 부산에서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청년 포럼이 개막했고, 7월 19일부터 본회의가 시작되지만, 이 회의가 의장국 교체 수준의 표면적 변화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OUV 기준 자체를 재정의하는 구조적 전환을 이룰 것인지가 관건이다. 흥미로운 건, 유네스코를 가장 격렬히 비판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가장 열심히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역설인데, 이것은 위선이 아니라 글로벌 문화 권력이 얼마나 깊이 내면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세계유산기금의 유적당 지원금이 1996년 6,900달러에서 2018년 2,008달러로 67% 급락한 상황에서, 시스템의 정당성 자체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핵심 포인트
OUV 기준은 처음부터 유럽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핵심 기준인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1972년 세계유산협약 당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강대국이 주도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는 독립한 지 10년도 안 된 상황이었고, 협약 초안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유네스코 자문위원 헨리 클리어가 선정 과정이 "본질적으로 서양 중심적"이라고 직접 인정한 바 있으며, 테일러 앤 프랜시스(Taylor & Francis) 학술지 연구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유네스코의 규범 활동이 유럽 중심적 기념물 위주 문화를 향해 있다고 느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기준의 '기념물성(monumentality)' 강조가 구전 전통, 영적 가치, 살아있는 문화를 체계적으로 배제해왔다는 점에서, OUV 기준은 '보편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유럽의 잣대를 전 세계에 적용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2004년 개정 이전까지 문화 6개 기준과 자연 4개 기준이 별도로 운용되었다는 사실도, 기준의 진화가 얼마나 더뎠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즉, OUV 기준의 태생적 편향은 설계자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협약을 만든 시점에 '보편적 인류'를 대표했던 이들이 실제로는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구조적 사실에서 비롯된다.
7.5대 1의 격차는 30년간 개선되지 않았다
유럽 문화유산 473개 대 아프리카 문화유산 63개라는 7.5대 1의 격차는 유네스코가 1994년 '글로벌 전략'을 도입한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유네스코 자체 분석 보고서(2020년)는 "글로벌 전략 도입 이후 저대표 지역 당사국이 크게 늘었지만, 비례적 대표성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아프리카 유산이 2018년 93개에서 2025년 112개로 절대 수치는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유럽도 계속 등재를 늘렸기 때문에 상대적 비율은 사실상 제자리다. 유럽과 북미 합산 시 전체 세계유산의 약 47%, 문화유산만으로는 52%를 차지하는 반면, 아프리카는 전체의 9%에 불과하다. 면적으로 아프리카는 세계의 20%, 인구로는 17%인데 유산 비율은 9%라는 사실이 30년간의 개혁 노력이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전략이 '유럽, 기독교, 기념물 건축'의 과잉 대표를 시정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그 이후의 등재 실적이 이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선언과 실행 사이의 만성적 괴리가 유네스코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임을 보여준다.
비판하면서 신청하는 역설이 시스템의 깊이를 보여준다
유네스코를 가장 열렬히 비판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등재 신청서를 제출하는 역설은, 위선이 아니라 글로벌 문화 권력이 구조적으로 내면화된 결과다. 케냐의 조지 오켈로 아붕구 박사는 유네스코 위원회를 "너무 유럽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위원회 부의장(2004~2008)으로 활동했다. 중국은 60개 유적으로 이탈리아와 공동 1위를 차지하면서 실크로드 등재를 일대일로의 정당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77개 문화유산의 약 절반이 스페인-이탈리아 식민지 시기 유물이라는 사실은, 자국의 토착 유산보다 식민지 유산이 유네스코 기준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다. 이 역설은 시스템 밖에서 비판하는 것보다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관광 수입과 국제적 위상 확보에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는 냉혹한 계산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자국의 문화를 유네스코가 정의한 기준에 맞추어 표현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비유럽 국가들은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유럽적 언어와 논리로 번역해야만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재정 장벽이 구조적 불평등을 영속시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비용은 건당 54만~73만 달러에 달하며, 이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전체 관광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미국 오케페노키 습지 신청에 50만 달러 이상의 민간 기부금이 투입된 반면, 케냐 아라부코 소코케 숲은 10만~30만 달러의 비용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유산기금의 유적당 지원금이 1996년 6,900달러에서 2018년 2,008달러로 67% 급락한 것은, 유적 수의 폭발적 증가를 재정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ICOMOS의 정규 신청 평가 비용만 해도 건당 22,000달러이고, 복합 신청은 44,000달러에 달하는데, 부유한 국가들이 세계유산기금에서 이를 충당하면서 개발도상국 지원 재원을 잠식하고 있다. 미국의 유네스코 재탈퇴(2026년 말 효력 발생)로 전체 예산의 8%가 감소하면, 업스트림 프로세스 같은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재정 구조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청 능력 자체가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을 문화 불평등으로 고착시키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개혁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위원회의 전문가 권고 무시가 정치화를 심화시킨다
스프링거 학술지의 계량 연구는 ICOMOS 전문가 자체가 식민지 유적과 토착 유적 평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편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결정에서는 정치적 요소가 전문가 권고를 압도한다는 것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2017년 회의에서 위원회가 ICOMOS와 IUCN의 전문가 권고를 무시한 비율은 약 90%에 달했고, 2019년 바쿠 회의에서도 83.7%에 이르렀다. 이는 전문가 심사 자체는 공정하지만, 최종 의사결정 구조가 외교적 거래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화 경향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며, 등재 여부가 유산의 가치가 아닌 해당 국가의 외교적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더 글로벌리스트에 따르면, 고소득국과 중소득국이 자국 신청 평가 비용을 직접 부담하면 약 63만 8,000달러가 절약되어 개발도상국 지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구체적 개혁안이 제시되었으나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가 공정하더라도 결정권자가 정치적이면 시스템은 부정의하게 작동한다는 것이 이 구조의 핵심 문제다.
긍정·부정 분석
긍정적 측면
- 불균형에 대한 공식적 인식과 제도적 대응이 시작되었다
유네스코가 1994년 글로벌 전략을 도입하고, 2022년에는 아프리카 세계유산 전략(2022~2029)을 채택한 것은 시스템 내부에서도 불균형을 공식 의제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2025년 나이로비 결과 문서가 '진정성의 복수적, 역동적 재정의'를 선언한 것은, OUV 기준 개혁의 학문적, 정치적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2020년 이후 아프리카 유산에 3,4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으며, 업스트림 프로세스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신청 초기 단계를 지원하고 있다. 2023년 ICOMOS의 원주민 참여 결의안 채택은 내부 전문 기관마저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인정한 전환점이다. 이러한 제도적 움직임들이 즉각적 변화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개혁의 방향성이 설정되었고 재정적 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변화의 첫 단추가 끼워진 것이다.
- 아프리카 국가들의 첫 신청 파이프라인이 확대되고 있다
2026년 코모로와 상투메 프린시페가 최초 신청을 했고, 2025년에는 기니비사우와 시에라리온이 처음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2027년까지 7개국이 추가로 첫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세계유산 시스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현재 아프리카 11개국이 세계유산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첫 신청의 흐름은 저대표 국가들이 시스템 밖에서 방관하는 대신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2023년에 100개 세계유산 이정표를 달성한 것도, 절대적 수치에서의 성장을 입증한다. 비록 비율적으로 유럽과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더라도, 참여 국가의 다변화 자체가 시스템의 대표성을 높이는 첫걸음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이 참여 국가들이 위원회 내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 위원회 구성의 다양성이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제48차 부산 위원회에서 유럽 5개국 대 비유럽 16개국이라는 구성은, 비유럽 국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역대 가장 다양한 위원 구성 중 하나다. 아프리카에서 케냐, 세네갈, 토고, 탄자니아 4개국이 참여하고, 의장국인 한국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몽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이런 구성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목소리가 심사 과정에서 더 크게 반영될 가능성을 높이며, 특히 아프리카 첫 신청국들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부의장도 자메이카, 레바논, 세네갈, 튀르키예, 우크라이나로, 기존의 서유럽 중심 리더십에서 벗어나고 있다. 위원 구성의 변화가 곧 기준의 변화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의사결정 테이블의 다양성은 개혁 논의의 필수 전제 조건이며, 이것이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 나이로비 결과 문서가 OUV 기준 개혁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
2025년 5월 나이로비에서 54개국 400명 이상이 참가한 국제문화유산회의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OUV 기준 개혁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논의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진정성은 단수적이 아니라 복수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하며, 구전 전통, 영적 결사, 사용 기능, 사회적 가치에서의 진정성을 유형 유산과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선언은, 그동안 학술적 비판에 머물렀던 OUV 기준 개혁 논의를 실천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 문서가 운영 지침에 반영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무형적, 비기념물적 유산의 심사 통과율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유네스코와 세계유산위원회에 이 원칙을 운영 지침에 통합하라는 공식 촉구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학술 토론이 아닌 정책적 행동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나이로비 선언의 54개국 참여라는 규모 자체가, 이 의제가 더 이상 소수의 학술적 관심사가 아니라 광범위한 국제적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려되는 측면
- OUV 기준 개혁이 구조적으로 극히 어렵다
OUV 기준을 바꾸려면 세계유산 운영 지침(Operational Guidelines)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계유산위원회 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21개 위원국 중 16개국의 찬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 5개국이 반대하더라도 비유럽 16개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가능한 숫자인데,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OUV 기준 개혁이라는 하나의 의제 아래 결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국이 자국의 등재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입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60개), 중국(60개), 스페인(52개) 같은 유산 강국들은 기준 변경이 자국 유산의 상대적 위상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현상 유지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로비 결과 문서의 원칙이 실제 운영 지침에 반영되려면 최소 2~3차례 위원회 세션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원래의 강력한 취지가 희석될 위험이 크다.
- 재정적 기반이 악화일로에 있다
세계유산기금의 유적당 지원금이 1996년 6,900달러에서 2018년 2,008달러로 67% 급락한 것은 시스템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의 유네스코 재탈퇴(2026년 말 효력 발생)로 전체 예산의 약 8%가 추가 감소할 예정이며,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업스트림 프로세스)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이다. 유적 수는 1996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기금은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았고,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 신청의 ICOMOS 평가 비용(건당 22,000달러)을 기금에서 충당하면서 개발도상국 몫을 잠식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세계유산 신청 비용 자체가 건당 54만~73만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아프리카와 태평양 도서국가들이 "돈이 없어서 신청을 못한다"는 현실은 재정 장벽이 불균형을 영속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 세계유산기금의 연간 예산이 250만~400만 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1,248개 유적을 실질적으로 보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이다.
- 위원회의 정치화가 전문성을 압도한다
세계유산위원회가 ICOMOS와 IUCN의 전문가 권고를 무시하는 비율이 2017년 약 90%, 2019년 83.7%에 달한다는 것은, 이 시스템의 의사결정이 유산의 가치보다 외교적 거래에 의해 좌우된다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드러낸다. 전문가 심사 자체는 통계적으로 공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최종 결정 단계에서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면서 전문성이 무력화된다. 이는 이중의 문제를 낳는다. 전문가가 '등재 불가'를 권고한 유적이 정치적으로 등재되면 목록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동시에 전문가가 '등재 적합'을 권고한 유적이 정치적으로 거부되면 저대표 국가들의 시스템 불신이 심화된다. 위원회 구성이 다양해져도 이 정치화 경향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준의 공정한 적용은 기대하기 어렵다.
- 기후변화와 분쟁이 저대표 지역 유산을 위협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 유산의 60%가 기후변화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데, 보존 예산이 부족한 아프리카와 소도서 국가의 유산이 비례적으로 더 취약하다.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말리 등에서 진행 중인 무력 분쟁은 해당 지역 유산의 물리적 파괴를 가속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보존보다 생존이 우선인 상황이다.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자연 세계유산 227개 중 최소 3분의 1이 원주민 전통 영역과 겹치는데, 유네스코 등재가 오히려 원주민 강제 퇴거의 근거로 활용되는 사례까지 문서화되어 있다. 탄자니아 마사이족(응고롱고로), 콩고 바트와족(카후지비에가) 등의 사례는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식민주의적 토지 수탈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산 등재가 해당 지역 주민에게 이익이 아니라 피해를 주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은, 시스템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글로벌 전략 30년의 실패가 구조적 개혁 의지의 한계를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1994년 "균형 있고 대표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세계유산 목록을 위한 글로벌 전략"을 도입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유네스코 자체 분석(2020년)이 "저대표 지역의 비례적 대표성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기간 동안 55개국이 새로 협약을 비준하고, 아프리카 전용 전략이 수립되고, 수천만 달러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은 문제가 재정이나 참여 부족이 아니라 기준 자체의 설계에 있음을 방증한다. 아프리카 11개국이 여전히 세계유산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30년간의 노력이 표면적 수치 개선에 그쳤을 뿐 구조적 변화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이 실패의 역사가 시사하는 것은, 기준을 그대로 두고 지원만 늘리는 접근법으로는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전망
부산 회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스템의 구조적 편향이라는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 나는 이 시스템의 향후 궤적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세 가지 시나리오와 함께 풀어보겠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기본 시나리오(base case)에 가장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구조적 변화는 선언보다 느리고, 기득권은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2026년 부산 회의 결과부터 보자. 이번 48차 위원회에는 30개 신규 유적이 심사 대상에 올라 있다. 코모로가 최초 신청(인도양 술탄국의 역사 메디나)을 했고, 상투메 프린시페도 처음으로 식민지 농장 유산을 신청했으며, 남수단은 긴급 신청으로 보마-바딩길로 이주 경관을 올렸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첫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신청들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씁쓸해진다. 상투메 프린시페의 신청 유산이 '식민지 농장'이다. 자국의 토착 문화가 아니라, 식민지 시절의 유산을 통해 유네스코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앞서 말한 '시스템의 내면화'의 실시간 사례다. 부산 회의에서는 위원회 구성이 유럽 5개국 대 비유럽 16개국으로 비유럽 다수이지만, 위원회가 ICOMOS 전문가 권고를 무시하는 비율이 83~90%에 달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정치적 거래와 외교적 고려가 전문적 판단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 전망에서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유네스코 재탈퇴다. 2025년에 선언되어 2026년 말에 효력이 발생하는 미국의 탈퇴는 유네스코 전체 예산의 약 8%를 날려버린다. 미국이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세계유산기금의 재정 압박은 더 심해지고,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건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이다. 유네스코의 '업스트림 프로세스(Upstream Process)', 즉 개발도상국이 신청 초기 단계에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예산이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네스코가 불균형 해소를 위해 마련한 도구가 재정 부족으로 무력화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2026년 하반기부터 이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2027년 첫 신청을 준비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술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
중기적으로, 2027년에서 2028년 사이의 변화를 전망해보자. 2025년 5월 나이로비 결과 문서가 채택되면서, '진정성(authenticity)의 다원적 재정의'라는 개념이 공식 담론에 등장했다. 이것이 세계유산 운영 지침(Operational Guidelines)에 실제로 반영되려면, 최소 2~3차례의 위원회 세션을 거쳐야 한다. 낙관적으로 봐도 2028년 50차 위원회쯤 되어야 초안 수준의 반영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 특히 이탈리아(60개), 스페인(52개), 독일(54개), 프랑스(53개) 같은 세계유산 강국들이 기준 변경에 적극 동의할 이유가 없다는 게 구조적 장벽이다. 기준이 바뀌면 자국 유산의 상대적 위상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중기 전망에서 가장 큰 저항 세력이라고 본다.
중기 전망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축은 아프리카의 자체적 움직임이다. 유네스코가 2022년에 채택한 '아프리카 세계유산 전략(2022~2029)'은 2029년까지 아프리카 등재 유적 수를 늘리고, 위험 목록의 아프리카 유적 절반을 제거하며, 전문가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네스코는 2020년 이후 아프리카 유산에 3,4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 11개국이 여전히 세계유산을 단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 전략의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2027년까지 7개국이 추가로 첫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청과 등재 사이에는 ICOMOS 평가, 위원회 심사, 정치적 조율이라는 여러 단계의 필터가 있고, 다수가 '보류(defer)' 또는 '참조(refer)' 처리되어 실제 등재까지 수년이 더 걸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 2029년에서 2030년을 내다보면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갈린다. 낙관 시나리오(bull case)는 나이로비 결과 문서의 핵심 원칙이 운영 지침에 통합되고, '살아있는 문화', '구전 전통', '영적 가치'가 OUV 기준에 공식 편입되는 경우다. 이 경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무형적 유산이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2030년까지 아프리카 유산이 현재 112개에서 130개 이상으로 증가하며, 유럽 비율이 40%에서 35% 이하로 점진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신청 속도를 조절하고, 미국이 유네스코에 복귀하는 시나리오까지 겹치면 시스템의 정당성이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 솔직히,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15% 이하라고 본다. 유럽이 자발적으로 문화 헤게모니를 양보한 역사적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 시나리오(base case)는 점진적이고 표면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는 경우다. 나이로비 결과 문서가 운영 지침에 부분적으로만 반영되고, '유럽식 진정성' 개념이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는다. 아프리카 7개국의 첫 신청 중 다수가 보류 처리되어 실제 등재는 3~4개에 그친다. 미국 재탈퇴로 세계유산기금의 8%가 감소하면서 개발도상국 지원이 축소된다. 위원회의 ICOMOS 권고 무시 관행이 계속되면서 전문성보다 외교적 고려가 우선한다. 이 경우 2030년 아프리카 유산은 118~125개(연 1~2개 증가 추세 유지) 수준이 될 것이고, 유럽 비율은 39~40%로 유지되며, 구조적 불균형은 사실상 고착된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55~60%로 본다. 국제기구의 개혁이란 원래 이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과거 유사 사례를 보면, 유엔 안보리 개혁 논의가 30년째 제자리걸음인 것이나, IMF 투표권 개혁이 수십 년에 걸쳐 미미한 변화만 이뤄낸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패턴이다.
비관 시나리오(bear case)는 개혁이 좌절되면서 시스템의 정당성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경우다. 미국 재탈퇴에 더해 다른 주요 분담국까지 기금 기여를 줄이면 업스트림 프로세스 예산이 사실상 소멸한다.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말리 등에서 분쟁이 지속되고 기후변화(해수면 상승, 사막화)가 가속하면서 아프리카 유산의 '위험 목록' 비율이 오히려 높아진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 유산의 60%가 기후변화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데, 아프리카 유적은 보존 예산의 부족으로 비례적으로 더 취약하다. OUV 기준 개혁을 위해서는 운영 지침 개정에 위원회 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유럽 국가들의 반대가 소수라 해도 비유럽 국가들의 분열로 충분한 다수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2030년 아프리카 유산은 112~118개로 현재 수준에서 정체하고, 유럽 비율은 40~42%로 소폭 상승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스템에 대한 글로벌 사우스의 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
내 전망이 틀릴 수 있는 조건도 짚어두겠다. 만약 부산 회의에서 예상 밖으로 강력한 결의가 나오거나, 중국이 아프리카 유산 지원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면서(일대일로와 연계) 게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에서 보존 활동을 벌이며 문화 외교를 확장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 같은 전략을 대규모로 펼치면 유네스코의 유럽 중심 구도에 실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유럽 중심'이 '중국 중심'으로 바뀌는 것일 뿐, 시스템 자체의 공정성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과거 냉전 시기에 미소 양국이 각각 자기 진영의 유산을 밀어넣던 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건, 7월 19일부터 시작되는 부산 본회의의 30개 신규 유적 심사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라는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첫 신청국들(코모로, 상투메 프린시페, 남수단)의 심사 결과와 ICOMOS 권고에 대한 위원회의 수용 비율을 보면, 이 시스템이 실제로 변하고 있는지 아니면 변하는 척만 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나는 2026년 부산 회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스템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실망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보편적 가치'라는 말이 진정으로 보편적이 되려면, 그 가치를 정의하는 테이블에 지금까지 앉지 못했던 사람들이 앉아야 한다. 그리고 그 테이블의 설계 자체를 바꾸는 것은, 의자를 하나 더 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국 독자에게 특별히 덧붙이고 싶은 것은, 부산 회의를 단순히 '한국이 주최하는 글로벌 행사'로 보지 말고, 한국이 그동안 이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는 것이다. 한국의 갯벌과 가야고분군이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이 시스템의 언어를 잘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언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경험을 가진 나라가 의장국이라는 것, 이번 부산 회의에서 그 경험이 단순한 행사 주최를 넘어 실질적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 참고 데이터
-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통계 — 유네스코
- 세계유산 선정은 유럽중심적이다 — 더 컨버세이션
-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의 연성 권력과 유럽 편향 — 스프링거 공공선택 학술지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혁 — 더 글로벌리스트
-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 유네스코
- 누구의 세계유산인가: 문제의 본질 — 이퀄 타임스
- 유산과 진정성에 관한 나이로비 결과 문서 — 컴 메이크 위 고 아프리카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RICS 모더스
- 유네스코 탈식민화 캠페인 — 서바이벌 인터내셔널